요셉은 형들의 계략에 빠져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또 팔려간 집에서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옥에 갇히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노예생활과 옥살이를 하면서도 총명함을 인정받았습니다. 감옥에 들어온 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훗날에는 왕의 꿈까지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파라오를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꿈으로 누군가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시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부분적인 것으로 성경이 요한계시록까지 완전하게 기록되어 우리에게 남겨지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완전한 것이 오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없어지리라. (고전 13:10)"
그러므로 모든 성경이 완성된 지금,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특별한 직통계시나 미래를 알게 하는 일은 전혀 없음을 우리가 주의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궁금해하거나 알고자 하여 점을 보거나 미신을 좇는 행위는 창세기에 사탄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창 3:5)"와 같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18. 이스라엘 가문의 이집트 이주
기근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지역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가나안에 살던 야곱과 그의 가족들도 식량난을 겪었습니다.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곡식 파는 일을 관장하는 이집트의 총리를 만나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이 장면은 요셉이 어려서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총리가 된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형들을 모른 채하며 요셉은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을 이집트로 데려오기 위해 작전을 세웠습니다. 형들에게 '정탐꾼이 아닌가?' 하며 곤란한 질문을 하고 감금을 하며 한 명을 인질로 잡은 채 막내 동생을 데리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라 명령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막내 동생 베냐민을 비롯한 아버지 야곱의 모든 식솔들을 이집트로 데려오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 땅 사람들을 섬기겠고 그 사람들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창 15:13)" 말씀의 성취입니다.
파라오는 자신이 아끼는 총리 요셉의 아버지와 그 식구들이 이집트에 온 것을 보았습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가족에게 이집트의 좋은 땅을 주고 그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19. 야곱의 축복
자신의 수명이 다 됨을 느낀 야곱은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손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자신의 아들들과 동일한 축복을 합니다. 본래 장자에게는 다른 자식들의 두 배의 재산을 상속하던 전례를 따르는 것이 보통인데 야곱은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준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파는 총 열 세 지파로 구성됩니다. 이 중에 훗날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제사장 지파로서 자신에게 속하게 하셨기 때문에 열 두 지파에서는 제외되고, 나머지 열 한 지파에서 요셉 지파를 둘로 나눠 열 두 지파로 완성하십니다.
야곱이 자신의 손자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에 오른손을 동생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형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며 축복합니다. 오른손의 축복이 더 큰데 동생에게 얹은 이유는 첫째가 아닌 둘째 인물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가 그랬고,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므낫세와 에브라임, 다윗과 그 형들, 이스라엘 왕국의 첫 왕이었던 사울과 둘째 왕이 된 다윗, 솔로몬과 형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다고 알려진 사도 요한도 세상적으로는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었지만 요한복음을 비롯한 요한일이삼서, 요한계시록까지 신약 성경 중 다섯권을 기록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인물을 통해 역사하시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통이나 사회적 서열보다 자신의 선택과 주권이 우선함을 보여주십니다. 첫째 아담이 지은 죄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사하시는 것. 아담은 죽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을 통해 구원 사역을 완성하심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모든 아들들을 축복하며 유언을 남깁니다. 그중에 유다에 대한 축복은 유다의 계보를 통해 오실 예수님을 예표 합니다. 유다 역시 장자가 아니었지만 그 위의 형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해 장자의 명분을 잃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선택 하셨습니다. 유다 역시 완벽히 올바른 인물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할 때 말리는 모습(창 37:26~27)과 이집트에서 요셉의 작전에 휘말린 동생 베냐민을 대신해 자신의 신변을 내놓는 희생적인 모습(창 44:18~34)을 통해 유다와 유다 지파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유다가 했던 의로운 행동은 죄에 빠진 인간을 중보하고 대신해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유다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20. 야곱과 요셉의 죽음
야곱은 나이가 들어 병에 들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땅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돌아갈 땅이며 현재 유대인들이 세운 나라 이스라엘의 땅이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 속 이집트의 풍요로움보다 영혼의 고향인 천국 본향을 소망하는 이스라엘의 유언입니다.
요셉 역시 장수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사 너희를 이 땅에서 빼내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려가시리라 (창 50:24)"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요셉의 죽음으로 창세기는 끝이 나지만 출애굽의 새로운 소망을 품는 마무리입니다.
end. 기독교인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믿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성경은 무오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6000년 전에 지금의 하루 24시간과 똑같은 시간의 6일동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은 창세전 타락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교만의 죄를 지었고 그로인해 인류는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약 1000년 후 노아의 시대에 타락한 천사들과 인간 여자들 사이에 문란한 일이 생겼고(창 6:2) 인간은 창조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로인해 대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로부터 약 1000년 후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삭과 이스라엘이 된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의 기록이 창세기의 내용입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시작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의 기원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창조, 특히 인간의 창조와 가정의 형성, 죄의 기원과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고, 그 죄를 메시아를 통해 사하시고 본래 창조의 의도를 회복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