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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koon Jul 17. 2024

Lonely Days

<퍼펙트 데이즈> (2024)

*스포일러 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4)

2024.07.03.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드라마, 일본, 124분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어쩌면 우리의 날들도 매일이 완벽했을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그린다. 그의 일상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날로그적이다. 그의 하루는 골목길을 청소하는 빗질 소리에 잠이 깨며 시작한다. 현관을 나서며 바라본 하늘의 풍경에 잠시 미소를 짓는다. 차에 올라 그날의 기분에 맞는 카세트테이프를 고른다. 음악과 함께 자동차는 움직인다. 음악은 그를 대신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그의 아침에는 흔한 휴대전화 알람도, TV도, 하다못해 라디오 뉴스도 없다. 그는 도심 속 철저한 고립자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매일 똑같이 흘러간다. 그에게는 동료가 한 명 있는데, 히라야마와 성격적으로 모든 것이 반대다. 상당히 수다스럽고 청소 일에 대충이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런 동료를 타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는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며 핀잔이 섞인 질문을 던진다. 히라야마는 대답 없이 혹시나 놓친 구석이 있을까 변기 아래까지 거울을 비춰보며 묵묵히 닦는다. 그는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운다.


점심은 청소구역 근처 공원 벤치에서 우유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나무, 혹은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빛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일을 마친 후 목욕탕에 들러 자신의 몸도 깨끗이 닦은 후 단골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꿈을 꾸고, 또다시 들리는 골목길 빗질 소리에 하루가 시작된다.


주말에는 코인 빨래방에서 밀린 빨래를 한다. 헌책방에 들러 소설책을 구입한다. 단골 이자카야에 들러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일주일간 찍은 필름을 인화해 보관할 것만 나누고 나머지 사진은 찢어버린다.


그의 삶은 너무도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삶을 흥미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삶이지만 하늘과 날씨는 바뀌고, 마주치는 사람들도 모두 다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도 행복이 있고 감동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사소한 일상만이 완벽한 하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혼자인 주인공이지만, 사실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철부지 어린 동료의 사랑을 도와주기 위해 돈을 빌려준다거나, 자신의 직업을 무시하는 사람을 포함해 스쳐 지나가는 이들 모두에게 그는 따스한 눈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그는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히라야마는 세 번의 인간관계 부재를 겪는다. 하나는 현재를 함께하는 동료의 갑작스러운 부재다. 전화 한 통만 남기고 사라진 동료는 어쩌면 히라야마의 퍼펙트 데이즈를 만들어주는 가장 큰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동료의 부재로 인해 히라야마의 하루는 보통의 날들과 다르게 흘러간다. 동료의 빈자리를 히라야마는 밤늦도록 대신해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본사에 항의 전화를 한다. 이것이 영화 내에서 그가 표현한 유일한 분노다.


두 번째 관계는 과거에 함께했던 가족, 조카의 등장과 또다시 반복된 헤어짐이다. 잊고 있던 가족의 빈자리를 조카로 인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 자세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히라야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큰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상처로 인해 고립된 삶을 스스로 선택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조카와의 며칠간 함께한 시간은 가족의 부재를 떠올리는데 충분한 사건이었다.


마지막 관계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과의 대화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대화에서 주인공의 심경에 결정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세상에 부재하게 될 존재와의 대화에서 히라야마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영화의 의미를 생각해 봤을 때 화장실 청소라는 직업은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히라야마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머무른 아날로그적인 생활은 새로운 관계를 원하지 않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삶은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은 선택과 소각이라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무의식적으로는 꿈을 통해, 의식적으로는 사진을 통해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히라야마는 사실 인간적 관계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영화 내내 드러냈다. 사소하지만 인간적인 관계들을 찾아보는 것도 영화의 숨겨진 감동 포인트이다.


영화의 엔딩, 그는 똑같이 하루를 시작한다. 늘 그렇듯 그는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한다. 그날의 음악은 Feeling Good. 하지만 그도, 그를 바라보는 관객도 짙은 감정이 흐른다. 왜일까. 그의 일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조카도 떠났고, 일에 대충이던 전 동료를 대신해 열심일 것 같은 새로운 동료가 왔다. 이전과 같이 완벽한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과 눈물을 숨길 수 없다.


사실 그의 인생은 완벽한 날들이 아닌, 외로운 날들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비롯한 상처받은 관계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었지만, 떠나온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아니었을까. 조카와 동료의 떠나감으로 인해 외로움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평범한 하루의 작은 행복과 따뜻한 사람들, 모두 퍼펙트 데이즈의 조건이다.


또다시 시작하는 그의 하루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기도하게 된다.

완벽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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