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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손자병법

나라를 위해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걸 위정자가 있는가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00 : 30.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바이러스성 폐렴(코로나19 바이러스)이 시작된 지 석 달 째 접어들고 있다. 3, 4월에 결혼 날을 받아간 사람들이 가을, 겨울로 미룬다고 다시 날을 받으러 왔다. 웨딩홀 위약금을 50% 물었다고 했다. 

  110여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을 거부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대한민국은 석 달 사이 100여 나라가 입국을 거부하는 후진국으로 후퇴한 듯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라고는 ‘인재’밖에 없는 나라다. 수많은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몰려갔다. 전 세계가 4차 산업을 부르짖고 있거나 말거나 내일의 ‘밥벌이’를 위해 그들은 의과대학으로 향했다. 벤처사업이나 혁신을 하다가는 조선시대 마차를 만든 ‘장영실’처럼 감옥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을 가지 않은 두뇌들은 외국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 머리나 배 아픈 사람 없습니까?  머리나 배 아픈 사람 없습니까?

  외과전문의였던 시부(媤父)는 하도 많은 의사들이 배출되자, 미래에는 채권 장사처럼 골목골목 의사들이 왕진 가방 들고 돌아다닐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 수많은 인재들은 어느 물 밑에 있단 말인가. 코리아는 코로나의 천국이 되었다. ‘신천지’라는 사이비 종교까지 설치는 바람에 내 고향 대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핵폭탄에 맞은 도시로 변해 버렸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셨다. 500년 만에 처음으로 서문시장이 문을 닫고, 거리는 유령도시처럼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침방울에 닿지 않고 피부접촉만하지 않으면 감염이 안 된다고 하니, 나가실 때는 마스크를 하시고 나갔다오면 손을 씻으시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어머니는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 줄 알고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스크 수급에 문제없다고 하더니, 마스크 구매 5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세계 13위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에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뉴스를 봐도 속 시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국가에 재난이 닥쳤는데,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이 나라를 이토록 걱정해야하다니. 나라 임금이 누구인지 몰라야 태평성대이거늘, 눈만 뜨면 우리 국민은 대통령 걱정과 나라 걱정과 4월 15일로 다가온 총선에 온통 영혼을 팔고 있는 위정자들 걱정으로 해가 저문다. 아무리 눈 씻고 돌아봐도 위정자들 속에 애국자가 없다. ‘애국자’란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온 국민이 애국자인데, 그 국민을 책임질 위정자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명리만을 쫒고 있다.

  - 지금 정치인들은 사공선후(私公先後)를 하고 있어요.

  공직에서 물러나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부하고 온 지인이 한 말이다. 나라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말이다.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사공선후란 말이 아프면서도 슬프게 들렸다.    

  집권당은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들에게 나라 안의 근심은 국민들의 건강이나 경제가 아니라, 오직 야당 국회의원들을 이기는 것이란 말인가. 현재 보수인 야당을 다 ‘괘멸’시키고 나면 어쩌자는 것인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 야당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책을 내 놓지도 못하면서 이합집산(離合集散)으로 누구의 우산 아래 들어가 

야지만 살아남을 것인가만 생각한다. 사교육 천국인 대한민국에 ‘정치인’을 양성하는 학원은 왜 없단 말인가. 오호 통재라! 

  아이들은 개학이 또 연기 되었고, 외국계 회사는 거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모두들 집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뉴스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미스터 트롯’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자가 격리 스타일’이지만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어지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황반에 변성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력은 급격히 나빠져 책을 오래 보고 있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손자병법(2008년)’을 보기 시작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 초, 오, 월 등 각 제후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손무가 최고의 병법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천하의 귀재 제갈공명이 있기 전에 손무가 있었다. 제갈공명이 구사하는 모든 병법은 손무가 저술한 병법이 기초였다. 손자병법은 현존하는 병법의 바이블(bible)이다. 

  손무는 원래 제나라 사람인데 당파싸움을 피해 떠돌다 오나라 사람인 스승을 만나 오나라에 정착한다. 그는 십여 년간 숲에서 은둔하며 병법을 저술한 후 세상으로 나간다. 

  뜻이 원대한 사람만이 세속을 초월해서 은둔 할 수 있다. 그는 천하를 꿈꾸었다. 오나라 왕 합려가 그의 초막으로 찾아온다. 인재를 구하는데 왕이 직접 행차한 것이다. 손무는 사람의 충심과 간사함을 구분 못하고 나라에 해를 끼치는 왕이 적지 않다고 충언한다. 합려는 그런 말을 하는 손무가 더욱 마음에 든다. 과인과 함께 천하를 꿈꾸자며 손무를 대장군으로 임명한다. 유비가 삼고초려로 제갈공명을 얻는 것과 같다.

  손무는 재상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를 격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왕 합려는 남쪽의 작은 월나라를 깔보고 공격하였으나 패하고, 부상 후유증으로 죽고 만다. 손무와 오자서가 합려 아들 부차를 보좌한다. 부차가 패권을 잡고 경국지색 ‘서시’에게 빠질 무렵, 손무는 사라져 은둔한다. 그는 떠날 때를 아는 자였다.

  그 후 오왕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간신 백비 말을 듣고 북진 정책을 펴다, ‘와신상담’으로 칼을 간 남쪽의 월왕 구천에게 패하고 자결한다. 

  오나라 왕 합려가 살아 있을 때 일이다. 그에게 근심거리가 있었는데, 조카인 반란군 경기였다. 오나라를 위해 경기를 제거해야만 했다. 합려가 초나라를 치러갔을 때 경기가 성을 공격하면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손무는 자객을 보내기로 한다. 손무가 나부산에 은거할 때 만난 기인 ‘요리’를 찾아간다. 요리는 개잡는 백정이다.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과 ‘유협열전’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기원전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 수컷들의 군웅활거를 ‘멋있어, 멋있어’하며 보고 있다가, 느닷없는 자객, 개백정 요리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다.

  - 조상님 불초손 요리가 절을 올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고 외로웠고, 세상의 비난과 멸시를 받아왔는데, 오늘 드디어 벗어날 때가 왔습니다. 대장군이 오나라 왕의 청을 받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는 제 생애 최고의 영광인데, 제가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조상님 제가 명예를 세워드리지요. 가문을 빛낼 때가 왔습니다.

  개백정 요리는 자신의 오른팔을 자르고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경기에게 신임을 받는 자객이 되어, 어느 날 그를 죽이고 오나라로 돌아온다.

  - 요리는 진정한 장사로다. 무엇을 원하는가?

  오나라 왕 합려가 묻는다.

  - 사서(史書)에 저희 가문 이름을 한 자 올려 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물론 오왕 합려는 그에게 천 평의 땅과 비단을 내린다. 그는 귀족이 되었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명리를 위해 한 일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백정 요리는 나라를 위해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오나라의 개백정 ‘요리’만한 위정자라도 있단 말인가. 

  요리는 애국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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