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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시네리뷰]와신상담

내 속에 아직도 복수의 칼날이 남아 있었던가

  그저 요즘 생활이 와신상담 중인 듯하다. 사람을 별로 만나지 않고 내 고향 대구도 가지 않고 부모님도 서울 오시지 않고, 더 더욱 인천 공항을 갈 일이 없어졌다. 항공 협력 회사 절반이 퇴직이나 휴직을 했다고 한다.

  팬데믹(pandemic:세계적인 전염병). 세상이 문득 암흑기에 접어든 것 같다. 창대한 앞날이나 원대한 꿈같은 건 잠시 접고, 숙연한 마음으로 하루살이처럼 하루 또 하루를 살아낸다. 내일 또 내일은 무지개가 뜰 것이라 여기며.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의 안부 톡이다.

  - 와신상담 중입니다.

  나는 왜 무심코 ‘와신상담’이란 고사성어를 사용했을까. 반성하며 조용히 자숙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물론 그 속에는 복수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선거가 끝난 후의 심정을 얘기한 건 아니다. 베트남의 지인이 그런 뜻으로 물었다하더라도 말이다. 아나키스트들에겐 선거판이 어떻게 되든 복수의 칼날 같은 건 없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인류는 지구라는 별의 바이러스인 셈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면 바이러스가 번식하는 형상과 똑같이 도시가 번져 나간다.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라는 별을 점점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지구도 이 우주에서 살아남아야겠기에 변종 바이러스 ‘코로나19’를 인간에게 보냈을 것이다. 

  지구로 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신을 살리는 백신이지 않겠는가. 어느 정도 인간을 솎아내어 더 이상 자신이 황폐해지지 않기 위해 말이다. 우주로 봐서는 지구가 건강해야 우주도 건강하게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지구와 더 나아가서는 우주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단 말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의 유래가. 섶(땔나무)에 누워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이다. 유래는 춘추 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에서 비롯되었다(사미천의 사기열전). 검색을 하다 중국 CCTV에서 만든 드라마 ‘와신상담’이 있는 것 알고 찾아본다.

  당시 양쯔강 하류에는 오나라와 월나라가 맞닿아 있었다. 세계사를 보면 언제나 국경을 맞댄 나라끼리 철 천지 원수지간이 많다. 오나라는 월나라에 비해 인구도 많고 군사력도 좋은 강국이다. 

  그러나 천하 패권을 노리며 북진 정책을 펴려면 일단 남쪽의 소국 월나라부터 굴복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월나라는 오나라의 발목을 물고 있는 형국이다. 오나라가 북진을 하는 틈을 타 성을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나라는 오나라의 아킬레스건이다.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를 깔보고 전쟁터에 갔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합려가 죽자 월나라 왕 구천은 오만해져서 책사 범려와 노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

  결과는 참담하다. 월나라는 패하고,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노예가 되어 끌려간다. 부차는 구천을 죽이라는 재상 오자서의 충언에도, 간신 백비의 말을 듣고 구천을 살려준다. 3년여 동안 죽음보다 못한 온갖 굴욕과 능욕과 비굴과 고초를 겪으며 그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복수를 꿈꾼다.

  구천은 살아 돌아와 섶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 저 유명한 중국 고대 4대 미녀(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한 명인 ‘서시’는 월나라 여인으로 이때 오왕 부차를 홀리는 미인계로 등장한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으나 흉노로 시집가서 왕후가 되고, 초선은 여포의 여인이지만 동탁을 잡는 미인계로 이용되고, 양귀비는 당나라 6대왕 현종의 귀비였다. 모두 경국지색(傾國之色), 임금이 미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만큼 빼어난 미인으로 일국의 왕들은 그녀들과 놀아나다 나라를 말아 먹는다.

  오왕 부차도 ‘서시’ 미인계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진다. 나라가 망하려면 경국지색에 반드시 하나 추가해야하는 구색은 간신이다. 나라가 망조가 들 때는 왕이 하늘의 뜻인 백성의 소리를 듣지 않고 간신들의 말만 듣는다. 동서고금 한 치의 예외가 없다.  

  문제는 간신이 스스로 간신인 줄 모르고, 왕 역시 옥석을 구별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없다는데 있다. 간신이 간신인 줄 아는 건 나라가 망한 후 역사가의 몫이니, 어쩌랴.

  우리가 잘 아는 오나라 장수 ‘손무’는 그 때 이미 주색을 즐기는 부차의 곁을 떠나 은둔하며 ‘손자병법’을 완성한다.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을 듣고 북진을 강행하고 천하의 맹주가 되려한다. 그 틈을 월왕 구천이 놓칠 리 없다. 와신상담 하며 11년을 기다린 기회가 아니던가.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하고 그로부터 9년 동안 전쟁을 한다. 월왕 구천은 승리하고 오왕 부차는 무릎을 꿇고 자결한다. 이리하여 20년 만에 와신상담 고사성어는 완성된다. 섶에서 자고 쓸개를 씹으며 복수를 꿈꾼다.

  그렇다면 나는 왜 베트남의 지인에게 ‘와신상담 중입니다.’ 라고 무심결에 회신을 했을까. 내 속에 아직도 복수의 칼날이 남아 있었던가. 무엇을 위한 복수인가. 누구를 위한 복수인가.

  

  그대로 순순히 저 휴식의 밤으로 들지 마십시오.

  하루가 저물 때 노년은 불타며 아우성쳐야 합니다.

  희미해져 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죽음을 맞아 침침한 눈으로 바라보는 근엄한 이여,

  시력 없는 눈도 운석처럼 타오르고 기쁠 수 있는 법,

  희미해져 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영국의 음류 시인 딜런 토마스(1914~1953)의 ‘순순히 저 휴식의 밤으로 들지 마십시오’ 전문이다. 

  T.S. 엘리엇(1888~1965)의 그늘에 철저히 가려진 방랑시인. 그는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 천재 시인이었다. 39세에 뉴욕의 어느 여관방에서 홀로 객사했다. 엘리엇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12년이나 일찍 세상을 떠난 불우한 시인이다. 39세에 떠난 딜런 토마스의 영혼의 나이는 100세 쯤 되었을까. 희미해져가는 빛에 분노하라고 허공에 종주먹을 날리듯 외친다. 신(神)에 대한 저항인가. 결코 죽음에 승복하지 말라고 선동한다. 그러나 그는 불혹이 되기도 전에 죽음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에겐 와신상담하며 세상에 복수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20년간 와신상담하며 복수를 꿈꾸었고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딜런 토마스에겐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20년이 아니라, 30년, 40년, 평생을 와신상담해도 꿈을 이루기 어려운 게 범부의 삶 같다. 시력 없는 눈도 운석처럼 타오르고 기쁠 수 있는 법, 희미해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겠다. 딜런 토마스를 위해, 나를 위해. 그러나 복수는 다음 생으로.

  와신상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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