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그리고 우리 안의 이야기"

by 비비이모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20여 일 동안 천천히 따라가며 완주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몰아보는 친구들 눈에는 답답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따라가느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3회분을 연이어 본 오늘은 큰일을 치른 듯 허하다. 두 무릎을 움켜쥐고 보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보는 일을 반복했다. 여운이 길어 감정을 붙잡아두려 글을 쓴다. 드라마가 아니라 잘 쓴 소설 한 편을 읽은 듯하다.


지난 가을 방영 당시 《은중과 상연》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혹자는 상연을 향해 '쌍년'이라는 과격한 평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상연이가 그저 나쁜 악역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어느 날 숙제처럼 1화를 틀었을 때, 나는 곧장 빨려 들어갔다. 어린 시절 은중이가 되었다가 상연이가 되었다가 했다. 은중이는 평범했지만 잘 스며드는 아이였고, 상연이는 반짝였지만 늘 겉도는 아이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를 보며 **“넌 참 좋겠다”**라며 한숨짓게 되는, 선망과 원망 사이 어디쯤의 지점 말이다. 은중이는 은중이대로, 상연이는 상연이대로 이해되고 안쓰러워지는 것이 이 드라마의 힘이었다. 외로움 때문에 상학을 좋아하면서도 바라보기만 했던 상연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극이 진행될수록 '나쁜 년' 상연이에게로 마음이 흘러갔다. 그녀의 행동 저변에는 ‘불안형 애착’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이는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부족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온전히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이 불안을 모른다. 아무리 확인을 해주고 확신을 주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늘 사랑을 갈구하는 메마른 마음. 상연이에게는 그런 깊은 사랑을 줄 사람이 끝내 없었다.


마음이 뒤숭숭하여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작가의 마지막 메시지가 깊게 다가왔다.

상연이처럼 외롭고 사나워진 날에, 나에게 은중이가 되어주기. 안아주고 보듬어주기.

이것이 이 힘든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진 치유의 메시지일 것이다. 결국 내가 내 안의 '상연'을 보듬어줄 '은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 깨달음은 드라마를 본 사람뿐 아니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다. 내가 본 좋은 드라마 중 하나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새옹지마, 뒤집히는 순간에야 보이는 삶의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