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뒤집히는 순간에야 보이는 삶의 묘미

by 비비이모


나이 들어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긴 안목으로 삶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 그 시점에는 무조건적인 행운이나 불행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결과물로 다가온다. 좋았던 일이 반드시 좋은 결말을 낳지 않았으며, 최악이라 생각했던 사건이 뜻밖의 기회를 품고 있었다는 깨달음은 인생의 아이러니이자 묘미다.


이런 걸 ‘새옹지마’라고 한다. 길흉화복은 예측하기 어렵고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눈앞의 결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사성어다. 특히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꽤 위로가 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다리가 부러진 불행 덕분에 징집을 면하고 목숨을 보전한 사연이 그렇다. 물론 아들이 아무 해 없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혹은 나갔더라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삶이 무슨 먹자골목도 아니고 '맛집 옆의 맛집'처럼 맛있는 일만 계속 이어지겠는가.


나쁜 일 속에 좋은 일의 씨앗이 있고, 좋은 일 속에 나쁜 일의 싹이 숨어 있다는 것만 캐치해도 큰 깨달음이다. 다만, 이 간명한 진리에 닿기 위해서는 기꺼이 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부침을 겪었다. 한창 잘 나가던 인기 강사 시절, 독립하는 게 이익이라며 쑤셔대는 선생들과 부추김에 넘어가 결국 학원을 차렸다. 그때는 그 무리와 어울려 지내는 게 좋았다. 가정도 아이들도 소홀히 한 채 밤낮없이 휩쓸려다녔으니 참 후회스러운 지난 날이다.

언니, 언니하며 간 쓸개도 내어줄 듯이 따르던 이들의 모습은 이해관계에 따른 연극이었나 보다. 막상 원장의 책임을 떠안자 그들은 돌변했고, 나를 고립시켰다. 제일 치사한 건 식사 때마다 모른 채 한다는 것. 아이고 어른이고 은근한 따돌림처럼 괴로운 게 없다. 배신감과 억울함에 얼마나 분하고 원통했는지 모른다. 몸이 고장나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마음이 극도로 힘들면 몸도 병든다는 걸.

결국 학원에 쏟아부은 비용과 지분을 모두 포기한 채 두 손 들고 나와버렸다.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서야 돌아온 곳은 가정이었다. 그 실패 덕분에 나는 정신 차리고 가족주의자로 살게 되었다. 그네들과 어울리느라 멀리했던 진짜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붙잡은 것은 가장 값진 회복이었다.


내 친구 P의 삶은 더 드라마틱한 새옹지마의 서사다. 신의 직장에 근무하던 유능한 남편이 어느 날 비리에 휩쓸려 강제 퇴직당했다. 이후 이어진 소송과 빚잔치는 말해 뭐하랴. 애가 셋이었다. 그러나 취미로 배웠던 빵굽기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팔던 빵이 입소문을 타면서 파티시에로 거듭났고, 공방을 거쳐 베이커리 카페 사장이 되었다. 남편보다 유능해진 것은 물론 요리 유튜버로도 유명해졌다.


또 다른 언니의 이야기도 있다. 모임에서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던 언니와 하소연을 듣고 너무 놀랐던 게 떠오른다. 말썽 한 번 안부리고 공부벌레 모범생으로 살던 아들이 어느날 여자친구를 임신시켰다고 고백했단다. 그 충격과 절망감은 평온했던 집안을 뒤흔들었다. 막 회사에 들어간 20대 아들의 혼전임신, 게다가 상대는 학력이나 집안이 다소 기울어진 아가씨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시킨 결혼이었지만, 지금 언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가 셋이다. 지금은 아들보다 오히려 며느리와 손주들이 예쁘다는 걸 보면 그 때의 불행이 오늘의 행복으로 전환된 셈이다.


이보다 극적인 새옹지마라면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기생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난한 기택이네 가족이 차례차례 부잣집인 박사장네에 취업하게 되는 것은 분명 엄청난 복이자 전화위복의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복을 얻는 과정에 깔린 비밀과 탐욕은 결국 가족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화의 씨앗이 되고 만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들 끄덕끄덕 하시겠지.


이처럼 모든 불행은 위장된 축복일 수 있고, 모든 축복은 숨겨진 위험일 수 있다. 인생은 살수록 알 수 없는 것이고,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숨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가만 보면, 복은 지혜로운 사람이 긴 안목으로 따먹을 수 있는 삶의 선물인 듯하다. 그렇기에 좋은 일이 생겨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나쁜 일이 벌어져도 쉽사리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 그 안에 불행의 씨도, 행복의 싹도 함께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게 인생을 오래 즐기는 방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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