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토록 바라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9급.
9급조차도 내겐 참 힘든 합격이었다. 꼭 시험 보지 않은 사람들, 합격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다.
내 주변엔 누가 공부해서 6개월 만에 합격했냐느니. 누군 1년 만에 붙었느냐니. 그런 말 들으면 장수생은 할 말이 없어진다. 영어, 국어 기본 베이스 있으면 가능하다. 실제로 공부량이 국어,영어에 투자한
시간이 거의 절반이었다.단기 합격수기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가 공부한 시간을 줄였으면 줄였지 늘리진 않는다. 그리고 기본 베이스가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실 대학교 졸업하고나서까지도 공무원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직업이었다.
사명감은 둘째치고 쥐꼬리만 한 월급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답답해보였다. 대학 시절 회계사를 준비했던 내게 공무원은 매력없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퇴사 후, 30대 초반의 여자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취업시장은 훨씬 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20대 후반에 썼던 이력서보다 더 스펙이 있었음에도
서류 통과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카페 아르바이트조차.
대안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호기있게 사표를 던지고 나왔지만.
막상 부모님이 절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상처 주면서까지 꿈을 꾸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공무원이란 꿈은 내게 꿈이라기보다
30대 여성에게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였다.
부모님이 지원해줄 형편도 안 되었다. 30대 큰딸에게 더욱.
지원을 바라는 것조차 너무 철딱서니 없는 기대감이었다.
여차여차 ..엉겁결에 합격했다. 0.2배수로.
(합격후기는 나중에 ..)
내 노력? 내 의지? 아니다.
절대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싶다.
겨우 9급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작할 때는..
하지만 커트라인 근처에서 계속 떨어지면서
내가 얼마나 교만한 인간이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영어에 계속 발목 잡혔을 땐. 답이 안 보였다.
영어 시험지만 봐도 울렁거려서 지문이 안 읽혔다.
세상엔 나보다 어리고 팔팔한 . 무엇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미 넘쳐 흘러났다.
주님이 나를 도우셨다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험 문제가 죄다 공부한 것만 나왔고 찍은 게 거의 맞았다.
모든 것이 다 순탄치 않았지만
모든 게 시험장에서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합격 후 가족만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면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소위 그들도 잘 나가는 사람들만.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배웠다.
또 합격 후에 새로운 욕심이 찾아왔다.
현직 게시판엔 죄다 공무원 된 거 후회한다는 말뿐이었다. 결국 공직도 직장생활이었다..
공무원 시험이 직업 구하는 시험 들중에서 제일 가성비가 낮다는 걸 합격하고나서야 알았다.
'7급 준비할까?' ' 공인노무사 준비할까?'
내 머릿속은 요동쳤다.
9급 합격의 기쁨은 정말 2주밖에 안 갔다. 2주도 많이 간 거였다.
사실 합격날 별로 기쁘지도 않았다.. 이제야 이 고생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만 들었을 뿐..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였다.
그러나 모든 시험을 접기로 했다.
시험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게 내 욕심과 교만이 더 크단 걸 알았다.
더욱이 여자에게 아이를 낳는 건 때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암튼 합격 후 2주 정도 방황을 했다. 박봉 월급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공무원 겸직금지의무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내가 무엇을 또 할 수 있을지.
글을 쓰기로 했다.
공직에 있는 일들을 글로 기록해보기로.
그리고 이곳에 그들을 위한 또 하나의 소통창구로 만들기로.
해보자.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