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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ul 13. 2023

'슬기로운 여름 나기~'는 없다.

    

유달리 답답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나만 그런가? 안부를 묻듯 슬쩍 물어보면 사람들의 대답은 비슷한 듯 다르다. 답답하기는 한데 어쩌겠냐, 지나가겠지’. 대부분 날씨 탓으로 돌리며 세상 이치에 통달한 현자 코스프레로 마감한다. 하긴 해가 왜 동쪽에서 뜨냐고 투정을 부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냥 방치하기에는 유달리 심하고 오래가는 올여름 체증, 주변 사람들을 커닝해 보니 해결 방법이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만큼 다양하다. 환경도, 관심사도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이런 공감의 말을 듣고 싶었을까. 더위 먹은 공감능력? 아님 내가 원래 그런 사람? 정체성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이 답답함의 실체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이래저래 성마른 나는 다시 답답해진다

     


폭발 일보직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치료는 공간이동, 배낭캐리어(등땀금지)를 끌고 제일 만만한 홍제천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왔다. 오후 2시, 우리나라에도 시에스타가 있었나? 그 많던 산책자들은 보이지 않고 천을 사이에 두고 양방향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먹이를 만난 듯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든다.

앞 뒤로 보이던 사람들이 없어서일까, 무서운 햇살 때문일까. 텅 빈 길은 끝없이 길어 보이는데 길 위에 혼자 서있는 나는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인양 외롭기까지 하다.

이럴 땐 뚜벅뚜벅 가는 것 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기보다 위안이 된다.



드디어 정상(?). 인공폭포가 보이는 넓은 테크 광장, 어디서 왔는지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마치 영화를 보듯 일제히 한 방향으로 폭포를 향해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보이는 것은 폭포와 사람들의 뒤통수, 오늘은 선택불가의 날. 초등학생으로 빙의하여 크레용으로 폭포 그리기. 그리다 아니면 북북 찢으면 그만이니까. 마음을 비워서일까 놀다 보니 어라, 그림 속에 폭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매불망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폭포가 내 그림 속으로? 신통방통과 동시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체증이 쑤욱 내려간다. 아 이런 마법이? 폭포와 뒤통수가 주는 위안이라니.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드디어 찾아낸 공감의 공기에 어떠한 말도 필요치 않다.

     


예전에 여름을 견디는 방법은 이열치열이었다. 자연과 싸우기에는 역부족, 받아들이고 공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뜨겁지만 시원한 그늘과 바람, 여름방학과 휴가, 그때 여름은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여름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마니아도 있었다.(지금도 여름이 좋다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냉방시설이 보편화된 요즘, 더위는 더 악랄해지고 물리쳐야 할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나의 체증은 아마 거기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더위가 싫고 무서워 창밖만 내다보니 우울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건너뛸 수는 없는 일, 여름이 쌓여서 가을이 되거늘 여름이 무슨죄?

 

무슨 일이든 하다가 막히면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기교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본기가 되어있지 않다면 사상누각이다. 내가 받은 여름의 처방전은 '이열치열', '정면돌파'라는 원초적 방법이다.

오후 5시, 천변에는 그늘이 내리고 광장에는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다. 집에서 머리를 싸매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쉽게 풀린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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