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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ul 01. 2023

장마틈새, 논산 일박이일 가출기.

     

오랜만에 같은 반(학년은 다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우리는 이반) 후배와 일박이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게다가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틈새시장중 놓치기 아까운 장마 틈새, 장맛비는 주야장천 퍼붓지 않는다. 구름이 파라솔이 되어주고 비가 열기도 식혀주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으니 관광지는 본래의 고색창연함을 되찾는다.

어디 갈까? 여행의 첫 번째 관문은 언제나 난제지만 후배의 18번은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결국 바통은 내게 돌아오고 혼자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논산이 튀어나왔다. “논산 어때?” 이럴 때 일반적 반응은 “웬 논산?” “논산엔 뭐가 있는데요?” 하지만 후배의 답은 “좋아요. 논산은 나도 처음이에요” 역시 이반이다.

생소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 검색창에 논산을 쳤는데 쭈르르 깔리는 군산정보, 올려보니 군산이라 써놓고 논산이라 읽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산과 논산은 ㄱ과 ㄴ차이, 조금만 방심하면 논산은 익숙한 군산에게 밀려난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도시는 어디나 비슷하다. 구도심에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이나 문화유적 몇 군데를 제외하면 강이나 저수지의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물 위의 데크길, 벽화, 야경. 천편일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사이트에 올려놓은 정보는 대부분 홍보용이라 직접 가서 보면 규모도 내용도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적을 바꾸면(여행에서 가출로) 여기나 저기나 상관이 없다. 장소가 문제시되지 않는다.

스케치여행에서 여행스케치로, 가출과 출가처럼 말의 순서만 바꿔도 생각이 바뀐다. 아니 생각에 따라 말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일단 가출을 하면, 아침마다 40살 먹은 아들 (윤석열 나이로 2살 젊어져서 아직 30대?) 깨우지 않아도 되고, 아침 먹고 돌아서서 저녁밥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듣는 엄마, 여보 소리를 며칠 안 듣는 것도 힐링이다. 엄마, 여보 소리는 내게 누군가 학급회의 시간에 요구나 건의 사항이 있어 번쩍 손을 드는 느낌이다. (왜? 또 무슨 일? 요즘은 부르는 소리가 무섭다.) 가출이 사춘기 청소년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오산, 남녀노소 불문 가정사에 지칠 때 ‘시간 이동’ ‘장소 이동’이 답이다. 하지만 ‘시간 이동’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백투더퓨쳐같이) 현실세계에서는 ‘장소 이동’만 가능하다. 가출할 때에는 양어깨와 등짝에 매달려 있던 짐보따리는 무거우니 집에 두고 나온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터이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으니 돌아와서 다시 들면 된다. 잠시 가벼워지기, 그게 가출의 묘미니까.  

   

출가와 가출, 뜻은 같은데 말의 순서가 바뀌면서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커진다.

한번 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과 얼마든지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것, 나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대부분은 싫고, 가끔 좋은 집이지만 일상을 팽계칠 정도의 위인 또는 성인은 못되니 출가는 언감생심, 오히려 ‘집’에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지만 배은망덕하게도 호시탐탐 탈출을 꿈꾼다. 그리곤,  좋은 구경  실컷 하고 와서  미안해서인지, 진짜 좋아서인지 헷갈리는 아부성 멘트를  날려준다. ‘집이 제일 좋아’.

오래전에 ‘집냄새가 싫어 오늘도 동네여관으로 퇴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격한 공감으로 다가왔지만 글은 글일 뿐, 현실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마음)에서 발끝(행동)까지 라고 한다. 그래서 어쩐다고? 요지는 출가 대신 가출이다. 가출의 여러 방법 중 내가 선택란 방법은 여행, 나에게 여행이란 가출이다. 땅땅!!  




   


논산을 마음에 둔 것은 배롱나무 아래 숭례사 꽃담을 보고 싶어서였다. 가보니 배롱나무 꽃은 아직 피기 전이었고 숭례사는 절이 아니었다. 현판에 보니 절‘사’가 아니니 사당 ‘사’, 돈암서원의 작은 사당이다.(아무리 쳐도 지도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 부슬부슬 내렸다 그쳤다 하는 서원 관람객은 우리 둘뿐, 의미(?) 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후배는 혼자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다니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시간 맞춰 해설사가 해설을 해준다) 나도 후다닥 그림 한 장 그리고 합류, 그런데 오랜만에, 그것도 현장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으니 재밌다. 해설사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해서 야단도 맞고. (현문우답? 사회적 정답을 말하기에는 너무 자기 생각이 많아진 늙은 학생들ㅋ).

원래 여행은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 나는 과거 속의 과거를 소환 중이다. 갑자기 꿈속의 꿈, 인셉션이 떠오르는 건?



선샤인랜드는 어반 스케쳐인 우리에게는 ‘드라마 세트장’이기보다 일단 소재의 천국으로 다가왔다.

택시를 타고 다니다 보니 동선이 자유롭지 않아 빠듯한 줄은 알았지만, 도착하니 이미 마감 두 시간 전, 하지만 들어가는 것 외 딴 선택지는 없었다. 너무 더운 날씨에 글로리아 호텔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 한잔 마시고, 세트장 둘러보니, 그림 그리기에는 너무 빠듯한 시간.(30분 드로잉 가동) “하절기에 6시 마감이라니 너무 이른 것 아냐? 입장료를 만원씩 받으면서” 툴툴대다가 결국 퇴근하는 직원들과 함께 (쫓기다시피) 나왔다.

(논산시에 민원 넣으세요! 누군가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드라마에 나왔던 글로리아 호텔, 불란서제과점, 거리와 집들은 생각보다 작았다. 이런 좁은 곳에서 말을 타고 총을 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드라마가 펼쳐졌다고? 잠시 갸우뚱했지만 촬영기술의 도움으로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에 금방 수긍모드로. 최소한의 설치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는 촬영기술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상과학, 액션 등등 영화를 생각하니 이해가 더 쉬워지지만 어쨌든 기술은 내겐 마술의 영역, 그냥 박수치며 즐기면 된다.

마음으로 찍어놓은 내면풍경을 꺼내다 보니 역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지만.. 갔으니 됐다.

안 갔으면 아쉬움이라는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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