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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Aug 21. 2024

스틸 썸머(still summer)

  

     

내가 좋아하는 스틸(still)을 여기에 쓸 줄은 몰랐다. 스틸 워킹, 스틸 러빙, 스틸 리딩, 스틸은 ‘아직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바람직한 일이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요즘 상황에서 '스틸 썸머'는 (개인적으로 다르지만) 부정적 느낌이 강해 머리에서도 입에서도 겉돌지만 때로는 반어법이 더 강한 임팩트를 준다. 어쨌든 스틸은 내가 좋아하는 부사, 스틸 드로잉을 내년 나의 인스타 아이디로 점찍어 둔 이유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는 그리는 중입니다’. ‘그림의 스타일은 달라져도 그림은 계속됩니다’. 나름의 의역은 이런 뜻이지만 이렇게 길게 쓸 수는 없으니 ‘스틸 드로잉’ 한마디면 그 뜻이 전달되리라는 생각에서다. 지금 써도 되지만 굳이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졸작 ‘그림을 쓰다’의 출판사 위탁관리가 올해까지라 연말까지는 닉네임보다 저자명을 써 줘야 할 것 같아서다. 부연하자면 책은 2년여의 세상 구경을 마치고 올 연말 말 내 곁으로 돌아온다. 집 나간 자식의 귀향처럼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흔히 말하는 ‘똑똑한 자식 국가 자식, 아픈 자식, 빚진 자식 내 자식’과 맥락이 상통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자식을 품 안에 끼고 살 수 없듯, 책(마음으로 낳은 자식)도 이제 제 갈 길로 보내야 한다.

각자도생! 아이 엠 ‘스틸 드로잉’, 얼굴은 못 바꿔도 아이디는 바꿀 수 있으니까.

     

샛길로 빠져 책이 노출되었지만 (본의가 아니었다고는 말 못 함) 본론은 원래 두 번째 단락에서 시작된다는 핑계로 다시 여름이야기로.

이번 여름은 싫고 좋고의 감정을 넘어 두렵기까지 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 내뿜는 열기에 지구가 폭발하지는 않을까, 스릴러물을 보는 듯 아슬아슬한 매일매일의 연속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괴물은 영화나 책 속의 괴물, 대상을 위협하고 처벌하지만 나름의 생성 이유(정당성은 차치하고)를 가지고 있다. 이유 없는 괴물은 없다? 그렇다면 여름을 괴물로 만든 것은 우리? 여름 입장에서는 세상 억울할 일이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방향을 돌리니.. 딱 ‘속 썩이는 가족’이다. 밉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가족. ‘본인인들 그러고 싶겠어?’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 ‘우리가 그렇게 키웠잖아’, 이렇게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는 가족 한, 두 명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동생, 언니, 오빠, 엄마, 아빠, 자식 포함 이촌 내, 남편은 혈연관계가 아니니 제외).

아무리 싫고 미운 들 여름은 죄가 없다. 굳이 잘, 잘못을 따지자면 지구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우리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피해자이기보다 가해자에 가까운 우리와 반대로 여름은 가해자 같은 피해자다. 결국 자연에게 화를 내는 것은 가족 흉보기처럼 ‘누워서 침 뱉기’다. 하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더 창피해지는, 이럴 땐 다른 카드를 꺼낸다. 카드명은 ‘미워도 다시 한번’. 지난여름들을 소환하고 추억하면서 ‘그래, 좋을 때도 있었지’로 미운 마음을 희석시킨다. 가끔 하는 한 가지 예쁜 짓이 열 가지 미운 짓을 잊게 만드는 육아 코스프레에 슬그머니 여름을 끼워 넣는다.

     


여름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아니 이 혹독한 여름을 통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일은 독서, 여름의 환상을 심어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에 고취되어 ‘여름의 책’(토베 얀손), ‘너무나 많은 여름이'(김연수)등 여름 책을 읽었다. 하지만 여름 서정에 젖는것도 잠시, 마치 고전을 읽는 듯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의 여름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물론 여름밤에 상영되던 '전설따라 삼천리' 얘기는 아니다.)


여름을 견디게 하는 것은 가을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 하지만. 여름은 겨울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덕목으로 사랑받고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여름휴가, 여름 밤바다, 백사장 파라솔,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수많은 여름의 서정들, 이제 그 여름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맞는 여름이 올해 유달리 낯설고 불편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예보는 더 충격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다른 '여름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야 할때, 여름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마냥 미워할 수만 없는 가족처럼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을 매번 괴물화 할 수는 없다.

     

여름은 아직 현역이지만 미세하게나마 나뭇잎 색이 달라지고 바람결도 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여름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단지 조금 지체되었을 뿐, 결국은 얼쩡거리는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수고했어. 내년에는 사이좋게 지내보자꾸나~‘ 조금 성급한 작별 인사와 함께 이맘때 생각나는 시 한 편으로 여름을 위로한다.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남아

       밤새도록 자지 않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낙엽들이 바람에 이지러이 흩어질 때 불안스레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헤메일 것입니다.

                                  라이너마리아릴케<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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