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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주 Jun 27. 2019

저출산이 비혼녀의 책임이라고?
비혼남은 어쩔 거야?

저출산의 원인 간단하지 않다

저출산이 사회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저출산 문제가 나오면, 으레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청년들이 제대로 된 직업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 특히 정규직 일자리 늘리기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청년 수입으로는 꿈꾸기도 어려운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을 못한다고 해서, 뛰는 집값 잡기에 강도 높은 정책을 내 걸고, 청년 또는 신혼부부를 위한 특별공급도 늘린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해서, 육아 휴직, 아빠 휴직, 아동 수당, 어린이집과 유치원 증설 등 육아부담을 줄여주느라 온 힘을 쏟는다.


하지만 이렇게 애를 쓰고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도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위에 열거한 원인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의 일부는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닌 것이다.

사실, 보편적 복지가 실시되어 주거비, 교육비, 육아비가 상당히 해결이 된 북유럽 선진국들도 별로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통계를 보면,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그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여성들이 저출산의 주범이라고?

3,40대 이상의 비혼 인구를 보면 여성이 훨씬 많다. 특히 경제력을 갖춘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 중 싱글이 많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적 현상의 1차적인 책임을 비혼녀에게 묻는 경우가 있다. 여성들이 집 없고, 차 없고, 자기보다 수입 또는 학력이 낮은 남자는 아예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학력에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이 능력을 갖추느라 나이까지 많아지니 그들이 만족할 만한 남성을 만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이전 세대 여성들은 교육받지 못했기에 경제적 독립성을 지니지 못했고, 생계유지의 방편으로 결혼을 선택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와 달리 고등교육을 받았고 경제적 독립성까지 지닌 지금 세대 여성들은, ‘많은 것을 기꺼이 희생할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 한’ 자신의 커리어와 시간과 노동을 희생해야 하는 가정 속으로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가사노동과 육아가 여성에게 독박이 되고 있는 한 결혼율과 출산율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30, 40, 50대가 된 비혼녀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결혼을 안 할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결혼할 상대만 나타나면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많은 비혼녀들이 낭만적인 사랑과 행복한 가정에 대한 환상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결혼 안 하는 여성이 늘어난다는 건 결혼 안 하는 남성도 늘어난다는 이야기인데, 여성들의 이기주의를 개탄하고 비혼 여성들이 저출산의 주범인 양 비난하는 건 형평에 어긋난다.      



오랜 직장생활을 통해 ‘노처녀’는 많이 봐 와서 익숙하지만, 근래에 부쩍 늘었다고 느껴지는 건 ‘노총각’들이다. 


내 또래 친구들의 자녀들이 3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을 넘어간다. 

결혼 안 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인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과 달리 딸보다는 아들이 더 많다. 그들은 직장생활에 바쁘고, 그나마 여가 시간은 ‘공부’와 ‘취미생활’을 하면서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지만, 태연하다.      


결혼을 여자 혼자 하나 연애하기 귀찮은 남자들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취업을 위한 준비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치열한 구직 현장에서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원을 가고 유학을 간다. 안정된 직장을 위해 온 20대를 다 보내며 각종 ‘고시’ 공부에 매달리기도 한다. 남자들의 경우는 군대 기간까지 필요해서 직장에 들어가는 자체가 늦어진다. 그 직장에서 자리 잡으려면 훌쩍 30대를 넘긴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사랑에 잘 빠지고 사랑에 빠지면 직진하는 일,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해도, 연애하고 결혼에 이르게 되는 상식적인 경로를 보면,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하고, 남자들이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잘 보이려고 전력투구하다가 여자에게 청혼하면서 결혼이 성사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20대의 연애는 사랑을 위해 돌진하면서, 돈과 시간과 감정을 온통 한 여자에게 쏟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머슴, 종의 위치를 감수한다. 그러나 그때는 직장도, 수입도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30대가 되어 이젠 좀 안정되었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온 시간과 돈을 쏟아 부울 열정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남자도 현실적인 나이가 되었다.


연애는 남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착취라고까지 공언하는 ‘비연애주의자’도 보았다.

(물론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는 가정과 가족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지위로 순식간에 바뀐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직장이 안정되자 취미 생활하고 여행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여자 친구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여자 친구 만들려고 굳이 애쓰지 않고, 또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자체가 피곤하다.


30대 후반 남성이 연애를 안 하니 속편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연애는 즐겁기도 하지만, 돈과 시간과 감정노동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연애하는 동안은 여자가 자기만을 위해 주고, 자기 얘기만 들어주고, 온 시간을 자기를 위해 써 주길 바라고, 심지어 자기가 원하는 건 비싼 것도 척척 사 줄 것을 요구하는데, 그런 호구 노릇이 이제는 싫단다.


여자에게 공을 들여 연애를 시작하는 과정이 귀찮아져서, 이제는 여자가 먼저 좋다고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먼저 대시하는 여자에게는 여성적 매력이 적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세상에서 그런 여자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누굴 책임지나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굳이 가정을 꾸리려고 애쓰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마지막 결정은 여자가 한다고 해도 시작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다.    


 


눈높이가 하늘을 찌른다 - 없음 말고.

우리는 매일 각종 매체를 통해 멋진 외모나 비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접한다. 

각 방면에서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그들을 집 안방에서 매일 보기 때문에, 그들이 매우 흔하고 가까이에 있는 걸로 느껴진다. 본인의 처지를 자꾸 잊어버리고, 현실에서 보는 ‘일반인’들이 눈에 안 찬다.   

   

남자들은 예쁘면서도 알뜰하고 개념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 지적이면서도 번듯한 직장이 있으면서도, 여성스럽고 온순하며 자기 가족에게 예의 바르게 할 사람을 찾는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남자들 위주로 쓴다.)

 

특히 남자들이 직업이 없는 여성과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다. 

전문직으로 경제력이 제법 있는 한 지인도 맞벌이인 아내가 전업주부인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왜 다 큰 성인을 부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생활비도 공동으로 내서 해결하고 각자 통장을 각자 관리하는데, 아내가 육아휴직 때 자기 통장 잔고가 쑥쑥 줄어들어서 초조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정규직, 전문직 여성은, 그런 남성보다 훨씬 적다. 

그런 여성을 만날 확률 역시 매우 적다.       


조건 좋은 사람과 결혼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적었을 때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쉽게 정을 주고받고 쉽게 가족을 이루었으나, 요즘은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사람 못 만나면 혼자 살면 되지, 굳이 왜 내 생활 희생하면서 맞춰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자신이 부족한 건 부족한 거고, 양에 안 차는 그런 사람들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지지고 볶고 사느니, 그냥 내 돈 벌어 내 취미생활하고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아쉽지 않다캥거루족.

한 친구는 기세 좋게 독립한다고 나선 자녀가, 반년 후에 (제대로 못 챙겨 먹어서) 까칠해진 모습으로 다시 짐 싸들고 부모 집으로 들어와서는 다시는 나가겠다는 말을 일절 않는다며 웃는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지’ 하면서... 

독립을 해서 나간 자녀가 가장 좋은 점은 ‘엄마가 없다’이고, 가장 힘든 점도 ‘엄마가 없다’라고 한다. 

부모의 집은 편하다. 월세도, 관리비도, 생활비도 안 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보기, 식사 준비와 뒤처리, 청소와 빨래 등 가사노동도 거의 면제된다. (물론 집집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대 때 직장을 갖자마자 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많은 형제와 함께 지내야 하는 좁은 집은 남루하고 불편했다. 집에서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했던 남편은 독서실을 전전하며 지내기도 했다. ‘단칸방’일망정 결혼은 비로소 우리에게 ‘공간’을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평생 양쪽 어른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면서 살았다. 경제적 능력이 적은(없는) 부모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건 당연하게 알고 살았다.   

   

반면에 얼마 전 독립해 나간 30대 중반의 아들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일체 생활비를 받지 않았다. 식사 준비부터 빨래, 다림질 등 아들에게 들어가는 가사노동도 완벽하게(?) 그냥 해 줬다.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미혼 자녀를 둔 친구들 대부분 비슷하다. 하나 혹은 둘인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독차지했던 자기 방에서 퇴근하면 쉬었다가 아침이면 출근한다. 


우리 부모 세대와는 달리, 우리 형편이 자식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으니 그럴 수 있는 일이겠다.  

(집집마다 상황이 다 다를 것이다.)

    

남자도 불편 없이 혼자 산다일코노미 마케팅

주로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독립해 나간 자녀들이 혼자 지내는 것도 전에 비해 훨씬 편리해졌다. 

싱글족이 늘어나서 저출산 현상이 심화된다며 전 사회적인 해법을 고민하는 한편에서는, 싱글족이 커플보다 더 소비를 많이 한다면서 싱글족을 향한 마케팅이 치열하다. 


그 결과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간편식, 일인용 가구와 가전제품,  혼밥 혼술을 보장하는 외식 산업,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싱글들을 위한 의류와 미용서비스, 사교 및 취미활동이나 운동 프로그램과 시설, 다양한 문화 활동과 여행 프로그램 등등.... 

혼자 살아도 재미있는 건 너무 많고, 시간 보낼 게 너무 많은 세상이다.


싱글을 위한 상품들은 어느 정도 가사 일을 해결하는 싱글여성들보다 도통 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은 싱글남성들을 더 편하게 해 주는 측면이 있다.

남자도 큰 불편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굳이 ‘피곤한’ 결혼을 왜 하느냐는 생각은 여성뿐 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점점 많이 한다. 힘들게 번 돈 모두를 가족을 위해 다 갖다 주고도 제대로 대접도 못 받던 아버지들을 보고 자란 그들은 굳이 결혼하지 않고도 즐겁게 자기 인생을 즐길 방법을 찾고 있다.     



인구가 주는 게 꼭 나쁜가 

저출산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심하게 말하면 기업의 관점에서만 보는 측면이 있다.

생산할 인구가 줄어서 노동력이 부족하고, 소비할 인구가 줄어서 경기가 침체된다는 비관적인 전망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인구가 줄어서 나쁜 건 재벌 등 기업이다. 

그들을 위해서 자기 행복을 희생하면서 결혼하라고? 애를 낳아 기르라고?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억지로 낳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솔로 생활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 흐름에는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까지 이미 가세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이 사회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가 줄어드는 걸 감안해서 사회적 세팅을 새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인구가 줄어들면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반드시 있다. 

(그 문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면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가 더 쉬워지는 거 아닌가?

인구가 줄어도 괜찮다고 낙관하고 이 사회의 프로그램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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