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때는 2016년 2월. 봄을 향해 달려가는 2월의 베를린은 코트를 입고 있어도 추웠고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하게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스웨덴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온 후 처음 선택한 여행지는 독일이었다. 독일이 스웨덴과 가깝기도 하고, 때마침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어 세계적인 영화 축제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와 베를린에 도착해 함부르크로 넘어가는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계획했다.
베를린의 첫인상은 '그래피티 천국'이었다. 유럽의 힙한 도시로 유명한만큼 거리 곳곳에는 그래피티들이 가득했고, 맥주병을 들고 다니며 마시는 '길맥'도 종종 보였다. 무엇보다 힙스터들의 패션을 엿볼 수 있었는데, 나라마다 사람들의 패션 구경하는 걸 즐기는 나로서는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여행 이튿날의 일이었다.
독일 여행 2일 차, 나와 친구는 베를린 대성당을 구경한 후 버스를 타고 독일의 랜드마크,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우산을 하나만 챙겨 왔던 우린 사이좋게 우산을 나눠 쓰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문 앞에 다다랐을 무렵, 어디선가 종이를 든 낯선 두 사람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인해주세요
‘갑툭튀’한 이들은 우리에게 사인을 해달라며 종이와 펜을 건넸다. 하지만 나의 싸늘한 예감은 ‘사인을 절대 해줘선 안돼’라고 외치고 있었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악명 높은 유럽의 소매치기들과 그들에게 가방이나 핸드폰을 도난당한 사례를 여러 번 들었었다. 내 앞에 서있는 두 사람 역시 내가 사인을 하며 한 눈 판 사이 소지품을 몰래 훔쳐 갈 것 같았고, 곁눈질로 같은 뜻을 확인한 나와 친구는 가방을 앞으로 움켜쥐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노노노노노!!!!!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거의 뛰는 듯이 정말, 정말 빠르게 걸었다. 이쯤 되면 포기했겠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우리 뒤를 더 바짝 붙어 쫓아오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추격전처럼 쫓기는(?) 입장이 되어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언제까지 따라오는 건지 살짝 짜증이 날 무렵 다시 뒤를 돌아보니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다다랐고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이 들어있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엥?' 뭔가 허전했다. 주머니에 넣어놨던 핸드폰이 만져지지 않았다. 가방에 넣었나 싶어 가방 속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코트 주머니가 뚫렸나 싶어 열심히 손을 찔러 넣었지만 주머니는 멀쩡했다. 가방 주머니, 코트 안주머니, 치마 주머니...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적여봤지만 폰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버스에서 내려 폰을 떨어뜨렸나 싶어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다시 걸어오며 거리를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어디에도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폰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싸늘한 기운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폰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나와 친구는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핸드폰이 사라진 모든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언제지?'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폰을 봤지?' 분명히 나는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하느라 구글맵을 봤었고, 그 후 확실히 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에는 곧장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기 때문에 중간에 들린 곳이 없었고, 코트 주머니가 뚫려있는 것도 아니기에 폰이 제 발로 걸어 나가지 않는 이상 사라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핸드폰이 사라진 원인으로 의심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사인을 해달라며 우리와 추격전을 벌였던 낯선 두 사람. 그들이 범인인 것이었다.
베를린의 중심에서 핸드폰을 외치다 -1
'베를린의 중심에서 핸드폰을 외치다 -2'에서 계속...
베를린의 중심에서 핸드폰을 외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