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 운동장을 돌던 일.
운동장을 돌 때면, 축구에 빠져있는 남자아이들이 찬 공에 머리나 몸통을 맞지 않게 늘 노심초사였지만, 그렇게 함께 돌 친구가 있어서 좋았다. 시기 질투, 혹은 무시와 외면. 그 사이 어디쯤의 시선에서 방황하던 나날들… 그런 내게 가까운 존재가 생겼다는 것은 큰 위안과 힘이었어.
사실은, 그런 방황마저도 내겐 제3의 고민일만큼, 내 안에서의 고민이 너무 크고 무거웠던. 그러니까 너무 아프고 외로웠던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던 어린 나날들, 털어놓을 곳 없이 혼자 감당했던 모든 것들.
그 모든 무게를 너무 늦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없더라고.
내 마음에 깊이 박혀서 빼내지지 않는 그냥 그런 것.
그렇지만 괜찮아. 이젠 즐길 수 있게 되었거든.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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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6년, 하지원 배우가 나왔던 KBS 드라마 <황진이> 속 황진이와 그녀의 스승, 백무의 대화이다.
백무: 기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황진이: 술입니까? 사랑입니까? 재예입니까?
백무: 아니다. 고통이다. 고통과 벗하여 제 목숨 문턱을 썩 넘을 수 있는 이. 그 이가 바로 진정한 기녀요. 예인이니라.
나를 넓히고 꿈에 다가가기 위한 수많은 발버둥이, 때론 너무 지치고 허탈해져 주저앉아 울기도 하지만. 상처받고 움츠러들어, 한 걸음도 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걸어볼게. 절뚝이면서라도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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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에게도 기방이 있었듯,
어른에게도 학교가 필요해.
인생은
sns에 좋은 부분만 잘라 전시하는 네모난 사진이 아닌, “무삭제 무편집본”이거든.
설마, 내가 나의 선생님, 친구, 교실, 운동장이 다 되어주는 것이 어른인 걸까…?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너무나 작아진 학교 운동장처럼, 지금의 내 고민들도 그렇게 작아져있겠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