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더디게 오는 봄을 원망하지 않게 된 것이.
기다림은 가장 절실한 사랑일 거야.
부모가 아이를, 교사가 아이를, 연인이 연인을,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팬이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을,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
교사시절, 가장 힘든 학기 초 3월, 우리 반 한 아이의 어머님이 예쁜 꽃을 사주셨다.
'교무실에 놓아두시라고.' 그 마음에서 감사, 응원이 느껴졌다.
잔뜩 긴장한 채로 이것저것 신경 쓰며 챙길 게 많아 몸과 마음이 무너질 듯 힘든 3월을 버티던 어느 날,
그 다정한 마음 한 다발로 1년 내내 행복했지.
교무실 한가득 퍼지는 따사로운 꽃향기.
그때 다짐했다. 나도 이런 사람 되어야지.
그 마음의 결을 똑 닮았던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였다. 생글생글 미소 가득한 동그라미 얼굴에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잘 따랐다. 유난히 힘든 날이면, 어찌 알고 내게 찰싹 붙어 온갖 애교를 부리며 마음을 녹이던 햇살 같던 아이. 귀하고 소중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쓰는 일, 다정함은 이토록 아름답다.
-
기다려주며 다정하기.
이걸 내가 나에게도 좀 해줘야겠다. 바깥으로, 다른 사람들에겐 다정하지만 나 자신에겐 한없이 모질고 날을 세우는 나를 좀 기다려줘야겠다.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더 다정해도 좋다고. 이제 나를 조금은 덜 괴롭혀도 된다고. 그래도 큰 일 안 생긴다고. 그리고 그 과정이 더뎌도 기다려주면서.
지나온 날들의 장면장면에서, 내가 왜 더 똑똑하게 나를 지키지 못했을까… 왜 바보처럼 당했을까… 하는 마음에 잘 지내다가도 울컥울컥 과거의 아픔이 나를 불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너는 기적을 만들어온 거라고 포근히 속삭이며 안아주고 싶다. 그러니, 지난날들과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는 내 마음도 이해 좀 해주자. 그 험한 세상, 못된 빌런들 사이에서 살아내느라 생긴 부작용들인데, 어쩔 수 없지 뭐.
-
최근에 산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한 부분이다.
[지금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아픔 속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어야, 문제가 완전무결하게 없어져야만 우리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수만 가지다. 지금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조금만 더 수월하게, 해결을 향한 발걸음 하나, 실낱같지만 숨 쉴 틈과 공간, 약간의 해소와 깨달음, 잠시 동안의 휴식과 진정, 1mm의 변화, 작은 실천...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삶이 살 만하고 원만하게 굴러간다는 느낌은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기대 수준을 조금만 낮추자. 나아질 수 있다. 삶은 조금만 노력하면 의외로 다정하고 살 만한 것이다.
-책 <다정함이 인격이다_작가:김선희> 중에서
-
당신의 3월에도 보라색 라일락꽃 한 송이 놓아둘게요.
가슴에 심어두면 영원히 시들지 않을.
찢기고 으깨지고 얼마나 힘들었니.
바야흐로 봄이 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