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님은 약 2년전부터 인지기능장애가 조금 있었다. 쉬운 말로 기억력 감퇴.
하지만 늘 돈계산에 밝으시고 집청소, 청결에 잠시도 쉬지 않는 분이시라 설마 치매가 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건망증이야 젊은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치매 1단계, 즉 경도치매 진단을 받던 날은 올해 2023년 설날 직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어머님 얼굴을 뵐 수 있었고 4명의 자식들이 노력하여 어머님은 치매 검사와 약처방까지 잘 진행되었다.
매일 드시는 약만 10알이 넘고, 그 중 장기복용해온 진통제도 다수이기 때문에 점점 노쇠해가는 어머님의 위장은 날로 약해졌을거라 생각된다.
오늘도 속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위나 장이 아픈 것은 아닌데 뭔가를 먹으면 속이 아리? 어릉? 하여튼 뭘로 설명할 수 없는 본인만의 단어를 쓰시면서 불편함을 내비치셨다. 애리다는 분명 아니다. 얼얼하다도 분명 아니다. 알 수 없다. 통증은 아니라고 한다. 무얼까 과연...
큰 형님은 어머님께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나, 곰팡이 피기 직전인 음식 등을 버리지 않고 드셨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나도 일부...아니 많이 공감하였다. 갈변이 되다 못해 물컹해진 남은 사과조각이 조그만 반찬통에 여기저기 담겨 있기 일쑤였고, 계란은 겉껍질부터가 오래되고 얼룩덜룩한 것이 결코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구마는 곰팡이꽃이 피기 직전으로 보였고, 김치는 죽처럼 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2년이 훨씬 넘은 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계셨다. 나는 그자리에서 어머님 댁 주소로 설화수 3종세트 18만원어치를 주문했다.
못먹을 음식과 못바를 화장품은 모두 쓸어담아 버렸다.
그 와중에도 못바를 화장품은 발에 바르면 되고, 못먹을 음식은 당신의 속이 괜찮아지면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우기셨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이 이겨서 정리를 완료하였다.
어머님의 치매는 알츠하이머이고, 불안이 매우 큰 우울증세가 있어 우울증약도 함께 처방된다. 이 약들 덕분에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큰 문제가 없이 지내오고 있다. 이 약을 빨리 먹지 못하였다면 어머님은 모든 생활의 끈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놓기 직전의 모습을 목격한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이 충격적이다. 그리고 CDR척도 1단계인 경도치매라고 말씀하시던 의사선생님의 눈빛도 기억난다.
무수히 많은 환자들에게 진단을 내리고 처방을 주면 무던해질수밖에 없다. 심각하지만 고칠 수 없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감과 세심한 처방이 없다. 친절하지만 감정이 없던 병원진료는 앞으로 더더욱 심해지겠지 생각했다.
약을 드시고 호전이 많이 되었음에도 예전에는 늘 지나다녔을 큰 대로변 사거리에서 주춤하셨다.
“나는 다 커보여. 건물이나 차들이 다 너무 크게만 보여..”
혼자 독백처럼 중얼거리셨지만 나는 이게 불안으로 느껴졌다. 약에 의지해도 지금 지나는 큰 대로변 사거리에서는 이제 집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집주소를 얘기하며 묻고 또 묻는다면 겨우 갈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은 그것도 어려울지도 모른다.
윗층에서 소음이 심해 얘기하려고 올라갔다가 몇층인지 헷갈려서 다시 내려오던 중 집을 못찾아서 한참을 계단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는 말씀도 언뜻 흘리셨다.
이것이 경도치매다. 이제 막 시작된 치매도 안전에 대한 주의가 각별히 필요하다.
병원에 가지 않고 가족들이 추측과 짐작, 카더라 통신으로 결론을 내리면 큰일난다. 반드시 주변 치매센터에서 무료검사를 받거나, 병원에 내원해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치매센터에서 받은 무료검사는 확진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서 돈주고 실질적인 검사가 확진이다. 뇌 정밀검사도 포함된다.
특히 홀로 계신 분들은 불안증세와 피해망상 혹은 우울증세가 더 크게 가중될 수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절친의 어머님이 우울증으로 스스로 하늘에 가셨을 때 내가 받은 정서적 충격은 정말 컸다. 그래서 울고 죽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약에 따라서 1~2주 꼬박꼬박 복용해줘야 효과가 잘 시작된다. 먹었다 안먹었다는 시간이 아까운 짓이다.
치매 뿐 아니라 불안과 우울같은 정신적 증상이 함께 있다면 약을 제 시간에 빠짐없이 먹는지 반드시 체크해야한다. 가족이 해야할 첫번째 임무이다. 모든 결과는 약을 잘 먹었는지 대충 먹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자 계시고 약을 잘 안먹는 스타일이라면 하루 빨리 장기요양등급신청(국민건강보험공단) 을 하여 방문서비스(재가급여)를 받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하루 몇시간 만이라도 약복용 체크와 증상에 대해 살펴줄 사람은 필요하다. 상한 음식을 먹지 않았는지도 꼭 확인할 것..ㅠㅠ
시모님은 약을 잘 챙기는 유형이라 정말 다행이다. 드실 때마다 남편에게 전화하여 물어보고 확인한다. 하루에 4번정도는 기본으로 통화하는 듯.. 그러나 이런 잦은 통화와 반복적인 말로도 증상악화를 막고 현상유지만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도 크게 감사한다.
치매가 더 진행된 가족이 있는 지인들과 통화하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있다. 약을 하루정도만 빼먹어도 증상이 확 나빠진다고. 그 말은 이제 내 뇌에 죽을 때까지 남아 어떤 일이 있어도 삭제되지 않을 것이다. 시댁에 도착해서도 어머님 표정과 약봉투 먼저 봤으니까.
약복용을 챙겨줘야하는 첫번째 임무 다음으로는 정기적인 방문이 두번째 임무이다.
치매인격체가 아닌 원래 우리 시모님인격체(깔끔하고 음식잘하시고 드시는 것도 잘 챙기는 스타일) 인데도 예전과는 다르게 냉장고가 점점 피폐해지고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쌓인다. 눈도 어둡고 후각도 희미해진 노인은 작은 곰팡이꽃이나 죽은 음식을 잘 가려내지 못한다.
정기적으로 가서 냉장고 정리 및 음식저장을 체크해줘야한다. 유통기한 지난 육류와 김, 커피, 견과류 등도 모두 확인해줄것. 특히 견과류는 사용기한이 지나 상한 걸 먹으면 크게 아플 수 있다고 하니 더더욱!
치매노인과의 언쟁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이다. 맞고 틀리고를 절대 얘기하지 말 것. 차라리 듣고 다시 질문을 하고 당사자가 스스로의 의견이나 기분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치매인격체는 어린아이이다. 긴 문장으로 많은 내용을 설명해줘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화를 내거나 울거나 또는 무시한다. 위험한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울타리만 잘 쳐주면 된다.
우리 모두의 앞날에 저승사자가 있듯이, 그 앞에는 치매사자가 있다.
남은 시간을 좀 더 나를 위해 썼으면 좋겠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자를 만나더라도 나를 위해 보내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