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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라의 보험세계 Oct 30. 2024

실비 너 몬데 대체


난 실비입니다.

사람들은 실손보험 또는 

실손의료비라고 불러요.


난 말입니다, 

실제 발생된 손해비용... 

흠 이런 말하면 

글을 읽던 사람들도 눈을 질끈 감으며 

이 창을 닫아버리겠지요. 


병원에 실제로 낸 의료비가 

실제 손해액이라 치고

이 중 

일부분을 돌려받는 게 실비죠. 


전 일종의 페이백같은 존재입니다.

전액은 아니고 일부분, 

상당부분, 

거의대부분 등인데

이건 나를 몇년도 몇월에 만나서 

싸인했냐에 따라서

조금 돌려받는 사람, 

많이 돌려받는 사람이 나뉘어집니다.


난 사람들의 입에,

기사거리에 늘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뭐 최근에는

실손24 라는 어플에서

아주 간편하게 페이백을 요청..

아니..보상접수라고 하죠. 

어쨌든 받을 걸 달라는 행위이니까. 


보상 요구 절차가 

매우매우 쉬워지고 있다가 핵심입니다. 


난 

세 사람의 얼굴을 

늘 살핍니다.


가입자

설계사

보상담당자


셋의 표정이 모두 밝으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없어요.


한두명 표정이 어두워지는건 

다반사입니다.


셋 다 이마부터 

흙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나는 천하의 못된 사기꾼같은 게 

되어버리곤 합니다.


뭐 익숙해요 

금융감독원이 코로나19 때부터 외치던

보험사기근절 어쩌구 보도자료에서

난 정말 도마위에 여러번 

오르락내리락했다구요.


그래도

스레드를 볼 때 

가끔 보람되기도 합니다.


내 덕분에 암환자들이 5천 정도는 

안심하고 원하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몇달만에 5천 다 소진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게 지원해주는 것에 비하면 

난 월 내는 가격이 굉장히 싼 편이거든요. 


암보험이나 종신보험이랑 비교해보세요

나만큼 싼 친구 있나..


여튼

지금도 난

장마철 구름같은 낯빛의 

설계사 머리 위에서 

칙칙한 기분을 씻어줄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설계사는 

자기한테 뭐 하나라도 

보험을 가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담당이 아닌 다른 보험 청구나 

문의사항을 다 지원해준다는 전략으로

고객상담을 합니다. 


그래서 사무실 의자와 합체되면

30분, 1시간 단위로 

조각조각 스케쥴표를 짜고는

하루 최소 8명, 10명씩 상담하는데 

단순문의, 보상접수, 설계하고 

제안하는 것 까지 빈틈이 없습니다.


오늘 같이 햇살 좋은 가을 날에도 

밖에 나가 걷거나 

점심식사로 맛집을 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무슨 재미로 사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 설계사가 

두 고객의 보험금 청구를 해줬어요.

두 고객은 모두 

아주 오래전 날 만나서 

싸인을 한 사람들이지만

이 설계사를 만나기 한참 전에 한 거라

설계사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해드리는 것이었어요.



한 사람은 날 무려 2009년 7월에 만났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2020년에 만났지요.



2009년도 인연이 된 사람은

얼마 전 좀 많이 아팠습니다.

입원도 좀 했구요,

지금도 앞으로도 치료와 관리는 계속됩니다.



내가 무한대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나도 최대 한도나 

최대로 사용가능한 기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2009년도 인연자는 

그 아팠던 질병을 진단받은 날부터

365일인 1년간은 

마음놓고 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비 낸 것에 대해 거의 대부분은 

내가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2009년의 나는 

1년을 보장해주고 나면 

그 이후부터 180일 즉 6개월간은

휴식을 해야했어요.

이 기간에 치료받은 비용은

내가 지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2009년 7월에 가입한 사람 모두요. 



이 설계사는

자기가 크게 관여할 보험도 아닌데 

직접 접수까지 해주고는

약관도 다운로드 받아서 읽어보는 겁니다.

봐도 봐도 어려운 걸 

또 봐서 뭘 얻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느려터진 이유가 여기 있군요.



2009년도 인연자에게

설계사가 나를 잘 소개해주더라구요. 


“2009년 7월에 가입하신 실비는

지금 판매중인 4세대 실비보다

보상받으실 금액은 많이 크실텐데요,

한가지 유의사항이,

진단일부터 1년까지는 좋은 조건으로 

보상이 잘 되다가

이후 6개월간은 면책기간이라고 해서

보상안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아~


진단을 9월에 받으셨으니

내년 9월까지 실비청구는 문제없고

10월부터 3월까지 6개월간은

보상이 안되는 시간이니

큰 검사나 정기검진, 치료일정은

10월부터 3월이 아닌 다른 달로 

미리 고려해서 계획해주세요~”


안좋은 소식을 짚어주는거라

설계사의 표정이 좀 난감해하는 것 같았는데

2009년도 인연자가 

이해도 잘 하고 흔쾌히 알겠노라 하니

설계사의 얼굴을 금새 보람으로 바뀌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오로지 돈에 의해서,

또 약관이라는 조건에 의해 움직이지만

나를 만난 고객과 설계사는

돈으로만 설명되지는 않아보입니다.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됩니다. 


(내가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많이 상하게 했을까는 생각하기도 싫지만요)


2020년도 인연이 된 사람에게도

설계사가 내 이야기를 합니다.


“영수증에 보니 

1인실을 계속 이용하셨더라구요오..

1인실 사용하신 비급여 비용은 

실비에서 보상이 좀 많이 달라집니다..


차액 80만원의 절반인 40만원이

보상대상이 되는데요

이것도 입원일수 체크해서

하루 최대 10만원까지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거든요오


그래서 이번에 청구하신 건

치료비용 70만원

1인실 80만원

합 150에서 계산해보니

120 정도 보상되실 것으로

예상됩니다아


입금액이 많이 다르면

알려주세요, 누락분 없는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원래 생겨먹은 게 

1인실 그 비싼 건

뚝 잘라서 절반, 

그것도 하루 10만원이하로만 

보상해준다는 조건을

얘기한 건데

이 말을 들은 2020년도 인연자가

툭 던집니다.


”너무한거 아닌가요, 낸 돈에서 한참 모자른 게 실비 맞나요“


설계사의 동공이 흔들리고

잠시 숨을 멈춥니다.

이걸 보는 나도

기분이 쪼그라듭니다.


1인실 사용료 몇십만원을 다 해준 적이

난 단 한번도 없거든요.

원래 해 준적이 없는데..

대통령이 와도 못해주는 건데...

이걸 설계사에게 따지듯이 말하니

설계사가 또 친절모드로 

상세히 설명해주고 앉았습니다.


이차저차 설명을 했음에도

2020년도 인연자가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따져본다고 하자

설계사는 한숨을 쉽니다.


‘다음 상담도 있고, 

오늘 나랑 만날 고객들을 위해

더 이상 

이 고객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은 그만하자.

소용없을 것 같아.’


좋게 말하면 

노력을 그만하는 것인데

뭐 까놓고 얘기하면

설계사도 자기 잘못이 아닌 걸로 

볼멘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멘탈관리를 위해

설계사는 유튜브로 

심야괴담회 한편을 봅니다.

그래야 찜찜한 기분을 

쫄깃한 호러기운으로 

치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너무한다, 따져보겠다..

이런 말은 

실제로 잘못한 사람에게 하는 말들인데

그게 설계사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

참 씁쓸합니다.


1인실은 병원에 따라서 

하루 50만원이 넘는 곳도 있는데

이것까지 내가 80%나 90% 까지 

돌려주게 되면

일부러 1인실을 요구하고

일부러 1인실을 유도하고

실제로 사용을 안해도 1인실을 쓴 것처럼 

가짜서류도 만들어주는 나쁜 무리가 

판을 칩니다.


백내장수술처럼

일부 나쁜 무리들 때문에

엄청난 난항조건들이 생긴 게 

얼마나 많습니까..?


영수증 보니 

1인실에 가야만 하는 병명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입원 내내 1인실을 썼을까

나도 물음표를 가지기도 했다구요. 



나는 

보험사기에 참 많이 휘말렸었습니다.

그래서 안되는 것도 많아졌지요.

그건 금융감독원에서 대대적인 보도자료로 

내놓은 것들이지 

내가 정한 게 아니에요.


설계사 얼굴 한번 보고

가입자 표정 한번 살피고

이렇게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자니

나란 존재는 참 

사람을 들었다놨다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 상에

대한민국에만 있는 나는 지금

4세대라는 번데기옷을 입고 있는데

언제 또 이 껍데기를 탈피하고

새롭게 태어날 지 모르겠어요.


더더더 복잡하고 어렵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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