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실비입니다.
사람들은 실손보험 또는
실손의료비라고 불러요.
난 말입니다,
실제 발생된 손해비용...
흠 이런 말하면
글을 읽던 사람들도 눈을 질끈 감으며
이 창을 닫아버리겠지요.
병원에 실제로 낸 의료비가
실제 손해액이라 치고
이 중
일부분을 돌려받는 게 실비죠.
전 일종의 페이백같은 존재입니다.
전액은 아니고 일부분,
상당부분,
거의대부분 등인데
이건 나를 몇년도 몇월에 만나서
싸인했냐에 따라서
조금 돌려받는 사람,
많이 돌려받는 사람이 나뉘어집니다.
난 사람들의 입에,
기사거리에 늘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뭐 최근에는
실손24 라는 어플에서
아주 간편하게 페이백을 요청..
아니..보상접수라고 하죠.
어쨌든 받을 걸 달라는 행위이니까.
보상 요구 절차가
매우매우 쉬워지고 있다가 핵심입니다.
난
세 사람의 얼굴을
늘 살핍니다.
가입자
설계사
보상담당자
셋의 표정이 모두 밝으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없어요.
한두명 표정이 어두워지는건
다반사입니다.
셋 다 이마부터
흙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나는 천하의 못된 사기꾼같은 게
되어버리곤 합니다.
뭐 익숙해요
금융감독원이 코로나19 때부터 외치던
보험사기근절 어쩌구 보도자료에서
난 정말 도마위에 여러번
오르락내리락했다구요.
그래도
스레드를 볼 때
가끔 보람되기도 합니다.
내 덕분에 암환자들이 5천 정도는
안심하고 원하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습니다.
몇달만에 5천 다 소진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렇게 지원해주는 것에 비하면
난 월 내는 가격이 굉장히 싼 편이거든요.
암보험이나 종신보험이랑 비교해보세요
나만큼 싼 친구 있나..
여튼
지금도 난
장마철 구름같은 낯빛의
설계사 머리 위에서
칙칙한 기분을 씻어줄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설계사는
자기한테 뭐 하나라도
보험을 가입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담당이 아닌 다른 보험 청구나
문의사항을 다 지원해준다는 전략으로
고객상담을 합니다.
그래서 사무실 의자와 합체되면
30분, 1시간 단위로
조각조각 스케쥴표를 짜고는
하루 최소 8명, 10명씩 상담하는데
단순문의, 보상접수, 설계하고
제안하는 것 까지 빈틈이 없습니다.
오늘 같이 햇살 좋은 가을 날에도
밖에 나가 걷거나
점심식사로 맛집을 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무슨 재미로 사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이 설계사가
두 고객의 보험금 청구를 해줬어요.
두 고객은 모두
아주 오래전 날 만나서
싸인을 한 사람들이지만
이 설계사를 만나기 한참 전에 한 거라
설계사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해드리는 것이었어요.
한 사람은 날 무려 2009년 7월에 만났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2020년에 만났지요.
2009년도 인연이 된 사람은
얼마 전 좀 많이 아팠습니다.
입원도 좀 했구요,
지금도 앞으로도 치료와 관리는 계속됩니다.
내가 무한대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나도 최대 한도나
최대로 사용가능한 기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2009년도 인연자는
그 아팠던 질병을 진단받은 날부터
365일인 1년간은
마음놓고 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비 낸 것에 대해 거의 대부분은
내가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2009년의 나는
1년을 보장해주고 나면
그 이후부터 180일 즉 6개월간은
휴식을 해야했어요.
이 기간에 치료받은 비용은
내가 지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2009년 7월에 가입한 사람 모두요.
이 설계사는
자기가 크게 관여할 보험도 아닌데
직접 접수까지 해주고는
약관도 다운로드 받아서 읽어보는 겁니다.
봐도 봐도 어려운 걸
또 봐서 뭘 얻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느려터진 이유가 여기 있군요.
2009년도 인연자에게
설계사가 나를 잘 소개해주더라구요.
“2009년 7월에 가입하신 실비는
지금 판매중인 4세대 실비보다
보상받으실 금액은 많이 크실텐데요,
한가지 유의사항이,
진단일부터 1년까지는 좋은 조건으로
보상이 잘 되다가
이후 6개월간은 면책기간이라고 해서
보상안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아~
진단을 9월에 받으셨으니
내년 9월까지 실비청구는 문제없고
10월부터 3월까지 6개월간은
보상이 안되는 시간이니
큰 검사나 정기검진, 치료일정은
10월부터 3월이 아닌 다른 달로
미리 고려해서 계획해주세요~”
안좋은 소식을 짚어주는거라
설계사의 표정이 좀 난감해하는 것 같았는데
2009년도 인연자가
이해도 잘 하고 흔쾌히 알겠노라 하니
설계사의 얼굴을 금새 보람으로 바뀌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오로지 돈에 의해서,
또 약관이라는 조건에 의해 움직이지만
나를 만난 고객과 설계사는
돈으로만 설명되지는 않아보입니다.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됩니다.
(내가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많이 상하게 했을까는 생각하기도 싫지만요)
2020년도 인연이 된 사람에게도
설계사가 내 이야기를 합니다.
“영수증에 보니
1인실을 계속 이용하셨더라구요오..
1인실 사용하신 비급여 비용은
실비에서 보상이 좀 많이 달라집니다..
차액 80만원의 절반인 40만원이
보상대상이 되는데요
이것도 입원일수 체크해서
하루 최대 10만원까지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거든요오
그래서 이번에 청구하신 건
치료비용 70만원
1인실 80만원
합 150에서 계산해보니
120 정도 보상되실 것으로
예상됩니다아
입금액이 많이 다르면
알려주세요, 누락분 없는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원래 생겨먹은 게
1인실 그 비싼 건
뚝 잘라서 절반,
그것도 하루 10만원이하로만
보상해준다는 조건을
얘기한 건데
이 말을 들은 2020년도 인연자가
툭 던집니다.
”너무한거 아닌가요, 낸 돈에서 한참 모자른 게 실비 맞나요“
설계사의 동공이 흔들리고
잠시 숨을 멈춥니다.
이걸 보는 나도
기분이 쪼그라듭니다.
1인실 사용료 몇십만원을 다 해준 적이
난 단 한번도 없거든요.
원래 해 준적이 없는데..
대통령이 와도 못해주는 건데...
이걸 설계사에게 따지듯이 말하니
설계사가 또 친절모드로
상세히 설명해주고 앉았습니다.
이차저차 설명을 했음에도
2020년도 인연자가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따져본다고 하자
설계사는 한숨을 쉽니다.
‘다음 상담도 있고,
오늘 나랑 만날 고객들을 위해
더 이상
이 고객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은 그만하자.
소용없을 것 같아.’
좋게 말하면
노력을 그만하는 것인데
뭐 까놓고 얘기하면
설계사도 자기 잘못이 아닌 걸로
볼멘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멘탈관리를 위해
설계사는 유튜브로
심야괴담회 한편을 봅니다.
그래야 찜찜한 기분을
쫄깃한 호러기운으로
치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너무한다, 따져보겠다..
이런 말은
실제로 잘못한 사람에게 하는 말들인데
그게 설계사도 아니고
나도 아니니
참 씁쓸합니다.
1인실은 병원에 따라서
하루 50만원이 넘는 곳도 있는데
이것까지 내가 80%나 90% 까지
돌려주게 되면
일부러 1인실을 요구하고
일부러 1인실을 유도하고
실제로 사용을 안해도 1인실을 쓴 것처럼
가짜서류도 만들어주는 나쁜 무리가
판을 칩니다.
백내장수술처럼
일부 나쁜 무리들 때문에
엄청난 난항조건들이 생긴 게
얼마나 많습니까..?
영수증 보니
1인실에 가야만 하는 병명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입원 내내 1인실을 썼을까
나도 물음표를 가지기도 했다구요.
나는
보험사기에 참 많이 휘말렸었습니다.
그래서 안되는 것도 많아졌지요.
그건 금융감독원에서 대대적인 보도자료로
내놓은 것들이지
내가 정한 게 아니에요.
설계사 얼굴 한번 보고
가입자 표정 한번 살피고
이렇게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자니
나란 존재는 참
사람을 들었다놨다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 상에
대한민국에만 있는 나는 지금
4세대라는 번데기옷을 입고 있는데
언제 또 이 껍데기를 탈피하고
새롭게 태어날 지 모르겠어요.
더더더 복잡하고 어렵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