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Nov 16. 2022

마그넷을 사노라면

대학교를 다니는 동생이 첫 해외여행에 다녀오자마자 식탁에 선물을 풀어놓는다. 옆에 앉아 기대하는 나에게 동생은 만화 캐릭터 모양의 파우치를 건넸고, 엄마에게는 유명한 사찰 모양의 마그넷을 선물했다. 남은 선물이 더 없는지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없는 대학생이 떠난 배낭여행에서 선물을 사봤자 얼마나 대단한 걸 사 왔을까 싶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김이 샜다. 선물 증정식을 마친 남동생은 앞으로 여행을 가는 곳마다 마그넷을 사서 모으겠다는 포부를 발표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마그넷이 남동생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비싼 선물을 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숨기는 비겁한 변명처럼 들렸다. 엄마는 선물 받은 마그넷을 주방 냉장고에 붙였다. 치킨가게에서 준 광고 자석 옆에 말이다. 주방에서 함께 엄마와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보이는 마그넷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가끔 메모지를 붙일 때가 아니면 말이다.

 

동생은 그 이후 본인이 말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여행을 다녀올 때면 투박하게 만들어 놓은 마그넷을 몇 개씩 사 오곤 했다. 점점 우리집 냉장고에 동생이 들여놓은 마그넷 지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병따개도 되지 못하는 자석 나부랭이가 무슨 소용이 있다고 굳이 사 모으는것인지,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냉장고 한쪽 벽면에 전시된 마그넷을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불평만 늘어났다.

 

대학교 졸업 후 동생은 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지인 태국에서도 역시나 코끼리 모양의 마그넷을 사 왔다. 그리고 신혼집에 장만한 새 냉장고에 코끼리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부모님 집에 있던 마그넷들 중 일부도 남동생 네 집으로 옮겨졌다. 냉장고 겉면 삼 분의 일은 마그넷으로 가득했다. 동생네 집을 갈 때면 세계지도처럼 펼쳐진 마그넷들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나도 해외여행을 다녀올 때면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마그넷을 샀다.


동생을 위한 마그넷 구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개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동생에게 선물할 용도 외에 내 것도 따로 샀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결혼 이후 여행을 자주 갈 수 없었고,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 나는 이유를 모른채 마그넷에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무용한 것을 사는 동생에 대한 타박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마그넷 구매는 어느덧 나의 여행 루틴이 되었고, 여행지의 기억을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의 기록이 되었다.


우리의 마그넷 구매는 여러 이유로 임시휴업 상태이다. 남동생은 여전히 가까운 곳 하나 쉽게 여행할 수없는 가장의 몸이고, 코로나로 발목이 묶여 해외는커녕 가까운 국내조차 자주 가지 못하는 나 역시 마그넷을 구매할 수 없다. 우리의 냉장고는 새 마그넷을 늘리지 못하고, 여행을 갈 수 없는 나는 가끔 마그넷 앞에 설 때면 아련한 눈빛으로 하나씩 눈으로 훑으며 과거를 추억했다. 동생의 집에 놀러가서 냉장고에서 커피를 꺼내다 동생에게 물어봤다.


“너는 왜 마그넷을 사는 거야?”

“그냥”


별 이유없이 마그넷을 산다고 이야기하는 동생이지만 정작 본인이 정의할 수 없는 그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좋았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기억, 유한한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추억할 수 있는 것을 모으는것이다. 동생의 방식을 그대로 배운 나, 우리가 좋았던 순간을 사랑하는 존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낯선 여행지에서 망설임없이 마그넷을 구매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