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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Oct 04. 2021

발레를 배우고 있습니다 (2).

취미 발레 3개월의 감상.

취미 발레를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이 되었다. 일주일에 2번씩, 총 25번의 수업을 들었다. 등록했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날이 쌀쌀해져서 타이즈를 옷 안에 입고 학원에 간다. 이제 타이즈와 레오타드에 익숙해져 레오타드도 세 벌이 되었고 드디어 단벌 신사에서 벗어났다. 항상 수업 15분 전에는 학원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을 라커에 넣어버린 뒤 대기실에서 몸을 푼다. 앞 시간대 수업이 진행되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는데 이 때는 조금 긴장되고 설렌다.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수업을 몰래 엿듣는 기분과 어서 수업을 듣고 싶은 마음에 두근두근 한다. 앞 수업이 끝나면 대기실에서 무용실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나는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선생님 옆자리를 좋아해서 총총총 빠르게 걸어가 자리를 잡는다. 수업은 매트, 바 워크, 센터로 이루어져 있고 처음에는 매트 위에서 간단한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으로 웜업을 한다. 웜업이 끝나면 무용실 구석에 있는 바를 옮긴다. 모든 수강생이 거울에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조금씩 조정하고 바 워크를 한다. 대체로 무릎을 접는 플리에, 바닥을 발바닥으로 쓸고 다리를 쭉 뻗는 탄듀, 발을 절도 있게 던지는 제떼, 발로 반원을 그리는 롱드잠, 발을 힘차게 위로 차올리는 바뜨망을 한다. 끝나면 바를 다시 구석으로 옮기고 센터를 한다. 요즘은 센터에서 플리에와 탄듀, 제떼를 한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발레 인사 (!)를 하면 수업이 끝난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발레를 짧게나마 배우면서 느낀 점은 '균형이 정말 중요하구나'이다. 수업을 시작할 때 귀가 같은 높이에 있는지 먼저 체크한다. 그리고 어깨, 골반, 무릎.. 온몸이 앞뒤 좌우 균형을 모두 맞출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분명 나는 옆으로 다리를 뻗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선 방향 옆으로 뻗고 있는걸 깨달으면 아차 싶다.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무게 중심도 자유롭게 이동해야 하는데 센터에서는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무게 중심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움직일 때 몸이 휘청휘청한다. 이렇게 뭘 신경 써야 하는지 아는 머리와 달리 몸은 따라가지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등 펴고 어깨도 돌려 내렸는데 골반이 밀린다던지, 무릎은 잘 폈는데 새끼발가락 쪽으로 힘을 주지 않아 발바닥 아치가 무너진다던지.. 한 동작을 제대로 하는 것도 참 힘들다. 가슴을 들고, 갈비뼈는 닫고, 어깨 내리고. 그리고 팔의 높이와 각도, 손가락. 선생님과 조금만 달라도 틀린 동작을 하는 것 같아서 거슬린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 돌아다니면서 자세를 봐주셔서, 선생님이 말없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 잘하고 있구나 싶어서 안도하고, 어느 순간 내 주변에 서서 지켜보고 계시면 엄청 긴장된다. 선생님이 손수 교정해주시면 감사하면서도 애써 가르쳐 주신 내용을 다 지키고 있지 못해 죄송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이번 수업에서 하나를 확실히 체화했으면, 다음 수업, 다다음 수업에서는 두 가지를 하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발레는 운동 효과도 있지만 무대 위에 오르는 무용이기에, 선생님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생각할 것을 강조하신다. 똑같은 팔이어도 더 길어 보이게, 목선도 더 잘 보이게, 그에 맞게 시선 처리도 할 수 있도록 한다. 상체를 옆으로 늘리면서도 고개는 바로 옆이 아니라 사선 저 멀리를 본다던지. 저번 달 수업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상태에서 선생님이 위를 보라고 하셔서 눈을 땡글 굴려 위를 봤는데 눈으로만 위를 보지 말고 코가 위를 보도록 고개를 들라고 하셨다. 그래야 위를 보는 것처럼 보이니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거울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는 건 괴롭기도 하지만 조금 재미있다. 음악 박자에 맞추어 동작을 하는 것도 즐겁다. 나는 박치라서 자주 혼자만의 박자를 타는데 가끔 수강생 모두가 각자의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연대감이 든다. 점프를 할 때는 뜻밖의 두더지 게임이 되기도 한다. 이러면 나는 재미있는데 선생님은 말없이 오르락내리락 흔들리는 몸들을 지켜보시다가 음악을 끊고 다시 점프를 시키신다. 박자를 맞추는 건 정말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발레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발레 수업은 누구라도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럿이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 같은 동작을 하는 수업 풍경과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곡선이 참 아름답다. 길게 뻗은 손가락과 매끈한 목선, 포인 한 발 끝까지 사랑한다. 하얀 커튼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는 아늑한 무용실과 그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나는 이 순간순간들이 정말 좋다. 언제까지나 나의 기억 속에 남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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