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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Mar 09. 2024

이제 좀 사람 같아지겠네요.

실수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작년 말부터 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올해부터는 5년간 지켜온 칼퇴요정직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기존 일에 더불어 새로운 일과 일 외에 팀 운영/관리 관련한 업무도 많이 맡게 되어 여러모로 두뇌 풀가동을 해야 했다. 시간은 부족한데 일은 넘쳐나니 정신을 조금만 놓쳐도 구멍이 뻥뻥. 주간 보고 자리에서 보고 자료에 빠진 내용들을 보고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 요새 여기저기서 인정받는 기분에 에헴, 하고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는데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 깜냥에  감당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인벤토리는 2개밖에 없는데 5개를 짊어지고 가야 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며칠 의기소침한 날들을 보냈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쭈굴쭈굴. 힝.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 놓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녀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지도, 감싸주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이제 좀 사람 같아지겠군요”라고 했다. 응?


“유니스 님이 실수한다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고 누가 죽지도 않아요. 괜찮아요. “


얼마 전 직속 상사와의 면담에서도 “실수를 해보는 게 나아요 “라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내게, 실수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발전도 없다고. 연차가 쌓이면 온통 새로운 일 투성이고, 업무 능력이란 건 루틴 한 걸 잘 해내느냐가 아닌 새로운 걸 얼마나 잘 해내느냐인데, 오히려 지금 실수하는 게 낫다고. 팀장님과의 면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저스트 두잇. 그냥 해!” 그는 내가 강박증이 있다고 믿는다 (나도 이제는

동의한다).


신입사원 시절, 우왕좌왕하다 실수했을 때 같이 일하던 언니가 해준 얘기가 불현듯 생각났다. “사람이 하는 거니까 실수는 당연히 있을 수 있어요.” 아주 예전부터 아무도 내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실수하면 옆에서 묵묵히 수습할 방법을 알려주고 도와주던 동료와 선배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 내가 뭐 언제부터 완벽했다고.


실수도, 실패도 내가 그로 인해 배우고 성장한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닌 ‘경험’이 된다. 경험은 사람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하고 일 걱정에 불안해하다 새벽 3시에 잔 사람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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