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

by 라라


좋아 하는거 하며 살아야죠

지루하고 찐득한 습기 먹은 공기가 뒤덮였던 무더위의 여름이 지나가던 지난 8월의 중반 어느 날,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던 그날의 퇴근길에 흘렸던 눈물을 잠시 떠올려본다.


몇 년 전부터 무척 노쇠해진 모친의 병환이 여름이면 고비가 되었다.

노인들에겐 계절의 크고 작은 변화도 버거운 선물이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피부 살결 근육 마디마디에 번갈아 불어대는 찬바람과 더운 바람은 온전히 그들의 몸을 가만 두지 않고 어딘가 무언가와 심한 사투를 벌이게 만든다.

그 사투를 벌이는 노모의 병환 앞에 불효녀 막내딸은, 8월 어느 날 그토록 좋아했던 취미생활을 잠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깊어지는 노모의 병환을 지켜보며, 금전적인 이유가 아닌 여유 있고 한가하게 취미생활을 할 마음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던 그 시간.

잠시나마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되었던 그 시간.

하지만 꼭 지금 당장 필요한 시간이 아니기에

노모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챙겨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고 색연필도, 펜(키보드)도 손 놓은 지가 몇 달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났던 D언니가 다짜고짜 내게 묻더라.

"니는 좋아하는 거 하며 살래? 잘하는 거 하며 살래?"

나는 즉답했다.

"당연 좋아하는 거 하며 살아야죠."라고.

딱히 나는 잘하는 것은 없지만 좋아하는 것은 뭔지는 알듯 했기에,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서랍의 열쇠를 한바퀴 돌려본다

그러다 얼마전 나의 메일함에 도착한 편지 한 통.

S잡지사에서 브런치를 통해서 기고글 청탁이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메일을 읽었다.

스팸인가, 가짜인가, 누가 장난을 치는 것인가.

하지만 기고글 청탁은 진짜였으며

매일같이 짧은 글을 읽고 묵상을 하던 S잡지사가 분명했다.

2년 전에 쓴 나의 글을 읽고, 0월호 특집 기고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세상에.

내게도 이런 일이 오다니.

그날은 하루 종일 알 수 없는 들뜬 기분으로 보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잊고 지내왔는지 다시금 돌아본 하루였다.

잠시 멈추었던, 잠시 지체하고 있었던 답답하고 닫혔던 마음에 공기가 한 움큼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쟁여져 있던 나의 부산물들, 여기저기에 남겨두었던 글과 그림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마음이 다시 몽글해지더라.


이렇게 갑자기 들어온 이 한 움큼의 공기마저도 내겐 선물일까.

잠시 숨 좀 다시 쉬라고 주신 것일까.


그리고 며칠 전 원고를 마무리 지었다.

원고라고 하기엔 민망한 A4용지 한 장 반이긴 하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좋아해 준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기쁘고 보람된 일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어떤 길이 내게 더 주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잠시 잊고 지냈던,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시간.

한 글자 한 글자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하고 머물렀던 그 시간이

다시금 나에게 설렘을 주었던 시간이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잊고 있던 마음, 잠시 지체했던 시간, 다시금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린다.


지난여름, 뒤돌아 서면서 서랍의 열쇠는 완전히 채우진 않았다.

열쇠를 한 바퀴 돌려 열어본다.

몽글하고 설레는 공기가 다시 불어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