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끔 생각나고
아직도 가끔 보고 싶다.
빛바랜 사진 속
장독을 씻고 계신 나의 할머니
몇 살 인지도 모를 까까머리 아기는
나인가 보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방이 4개인 집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으니,
막내인 나는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그래서였을까.
막내 손녀딸인 나를 더욱더 예뻐하고 사랑해 주셨다.
어스름 새벽녘에 실눈을 뜨면
할머니는 초 하나 켜고 길고 긴 염주를 돌리셨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할머니는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걸로 기억된다.
매일같이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기도를 하셨을까.
6살 꼬마였던 그때
아침에 눈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순덕이"라고 불렀다.
세상 이렇게 착하고 순한 아이가 없다고 복덩이라고.
아버지에게 "니는 막내 순덕이 덕을 볼끼다~국모가 될 인상이다."
라고 하셨다고도 한다.
국모라...
그만큼 할머니 눈엔 내가 여왕님, 왕비님으로 보였겠지.
언니 오빠는 할머니 심부름을 잘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래서 나에게만 심부름을 시켰고
나는 투정 한번 안 부리고 어디든 심부름을 다녀왔다.
노인정에서 놀다가 저녁 즈음 집에 돌아오시면
한복 치마춤에서 주섬 주섬 무언가 가득 꺼내주시는데
먼지 묻고 담뱃재 묻은 사탕들이다.
나에게만 주신다.
언니 오빠 주지 말고 나만 먹으라고.
맛있게 까먹었었다.
사탕 껍질에 묻어있던 먼지와 담뱃재는
그 어린 나에게 아무런 "더러움"이 될 수 없었으니.
그러다 할머니는 내가 6학년인 어느 날 돌아가셨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의 한 조각.
모든 가족들이 할머니의 임종 앞에
한 명 한 명 방에 들어가 인사를 했고
막내인 내가 가족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고 나왔다.
죽음이 뭔지도 몰랐던 그때
그저 할머니가 이제 곧 가실 거 같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라는 아버지 말에
그냥 멀뚱히 할머니 얼굴만 보고 나왔는데
내가 나오고
바로 그 순간,
아버지와 고모들이 "어머니~"하고 대성통곡을 했던
그 순간이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그렇게 예뻐했던 막내 손녀,
순덕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할머니는 그렇게 숨을 거두셨다.
가끔 할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날들에
나는 어른이 되고 결혼을 했다.
첫아이를 임신했던 그해,
할머니 제삿날 친정집으로 갔다.
입덧이 너무 심해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방에서 내리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인지 진짜인지
내 머리맡에 할머니가 계셨다.
온화하게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막내 손녀딸이
훌쩍 커서 뱃속에 당신의 증손자를 품고 있었으니
얼마나 더 예뻤을까
그 순덕이가 순덕이의 새끼를 품에 안고 있었으니
할머니는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눈을 뜨니 할머니는 안 계셨지만
그날 낮에 꾼 꿈,
꿈속 할머니의 얼굴은
오래도록
오래도록
남아있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고
아직도 가끔 보고 싶다.
나의 할머니
빈귀덕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