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묵상
시선이 맞닿은 곳
루이, 너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니?
새해 어느 날 오후, 올해 신년 계획으로 꼭 성경 필사를 해보겠다 마음먹고 책상에 앉았다.
벌써 8년 차 성경 공부를 하고 있고, 올해는 아마 <로마서> 공부에 들어갈 듯하다.
개강 전까지 두어 달의 여유가 있는 터라, 예습 겸 필사를 해볼까 노트도 샀고,
이번엔 제대로 한번 해보자 마음먹은 터라, 볼펜도 새심으로 갈아 끼우고,
책상도 깔끔하게 정리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앉았다.
그리고 성경책을 한 장씩 넘겨본다.
그렇게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닌듯한데,
어느새 손때 묻은 흔적과 여기저기 밑줄 그어진 공부의 자국도 남아 있다.
그러다 루이가 책상 위로 올라온다.
종이류, 박스류 위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습성상, 노트가 따뜻하고 편한 방석인 양 자연스럽게 앉아버린다. 그리고 책상 위의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하는 묵상 달력'으로 시선을 보낸다.
루이, 너도 기도란 걸 하는 거니?
루이의 시선이 맞닿는 곳에 내 눈도 가닿는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열심히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오랜만에 성당의 A 언니와 S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최근 나의 성당 봉사와 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이이기를 나누었다.
현재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매주 주말이면 성당에 살다시피 하던 몇 년의 시간을 더해,
최근 전례단에도 들어가 독서도 하고 이제 미사 해설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봉사가 늘어남에 따라,
나의 개인적인 일상에도 조금 영향이 오기 시작했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게다가 봉사 활동인데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누군가 해달라고 얘길 하면 최대한 하려고 하다 보니,
한 달의 스케줄표가 금세 빼곡하게 채워진다.
비신자 지인들은 이런 나를 잘 이해 못 하고
"요즘 너무 성당일에 빠진 거 아냐"라는 예쁘지 못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게요. 나는 무엇에 빠진 걸까요."
이런 곱지 않은 시선에 어느 날, 순간 무너지고 눈물만 흘렸던 날도 있었다.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항상 부족하다 느끼고 목마르고 허전함이
내재하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이런 나를 보던 A 언니가 대뜸 묻더라.
"너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야"라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던 지라,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면서 A 언니의 하느님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맨날 투정 부리고 짜증만 내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시는 하느님이시고, S 언니의 하느님은 조건부 기도를 들어주는 딜을 좋아하시는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럼 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
그날 이후,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인 것처럼,
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채워도 채워도 뭔가 목마름이 있고,
읽어도 읽어도 부족함이 있는 나에게,
내게 무엇을 하길 바라시는 것일까.
루이의 시선이 맞닿은 그곳에 답이 있을까.
아니, 나는 그보다 더 높이 맞닿는 그곳에 답이 있을까.
나에게 자꾸 무언가 하라고 주시고,
다른데 쳐다보지 말고, 묵묵히 불러주면 대답하고 곁에 머물러만 있어 달라고
욕심을 부리시는 하느님이 아닐까.
마냥 나를 이뻐만 해 주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 욕심부리시는 것일까.
"너 어디 있느냐"
"예, 여기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
나는 오늘도 그저 대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