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친구

by 라라
잠시 쉬다가 올게


몇 년 전 번아웃이 온 윤희는, 남편과 함께 캐나다행 비행기를 끊었었다.

잠시 휴식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전재산을 정리하고 2년 정도만 쉬다 오겠다고 떠났던 친구.

시간은 금방이다.

2년이 뭐야...

그 힘든 코로나 시기를 버티고 이런저런 이유로 벌써 6년째 체류 중이구나.


"언제 올 거야?"

가끔 카카오톡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제나 저제나 친구가 언제 올지 항상 궁금했었다.

2년 뒤면 돌아온다고 했던 그립고 보고 싶은 친구인데...

"글쎄, 모르겠어..."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긴말이 없는 윤희답게,

온다며 오는 날이고 간다면 가는 날인, 그녀 다운 대답이다.

한국에서 들고 간 전재산이 바닥일 보일 즈음, 다행스럽게도 남편 J가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했다는 소식도 최근 접했다.

아직 영주권은 받지 않았지만, 당분간 '외국인 노동자'의 삶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그곳에서 몇 년 더 살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러던 얼마 전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윤희의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만나기 전,

"나 살 많이 빠졌으니 놀라지 마. 실은 건강 이슈가 좀 있어서 잠시 들어온 거야"

라고 운을 떼며 미리 밑밥을 깔더니, 정말이지 몇 년 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안색이었다.


건강하자 친구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영어도 잘 안되니 병원을 꼬박 갔을 리 만무했을 것이고,

그 내성적인 친구가 속으로만 앓았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맘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호기롭게 쉬다가 돌아올 것을 장담하고 떠났는데,

얼굴이 반의 반으로 줄어들고,

세월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듯한 그 모습에 아픈 마음을 감추며 애써 웃으며

마주 보게 되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소주 한잔 기울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있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나의 모든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그녀는 오히려 내가 더 안쓰럽단다.

애써 웃고, 아닌 척, 술도 척척 마시는 나의 모습이, 더 밝은 모습 뒤에 있는 내 모습이 짠하다고 한다.


뭐야 친구야. 짠함 배틀이라도 하는 건가.


서로의 모습에 짠함이 서려있다.

30년 넘은 우정에서만 보이는 서로를 위한 짠하면서 진한 사랑이다.


고3 여고시절, 매일같이 똘똘 뭉쳐 다녔던 우리 사총사들. (나, 윤희, 그리고 J와 W)

책상 서로 마주 보며 야자시간에 땡땡이도 치고

엄마에게 책값과 졸업앨범 값을 부풀려 받아 그 돈으로 미용실 가서 머리 파마도 했고,

학원 간다 해놓고 노래방도 갔고,

그래도 그 시절 수능은 잘 쳐보겠다는 양심 있었던 고3이었기에,

그 시절 N유업사의 '아인슈타인'우유만 마셨던 우리들.


그렇게 추억 많은 우리들.

오래된 친구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기만 한데,

지금은 어느덧 눈물 많은 반백살의 아줌마가 되어 살아가고 있구나.


건강하자 친구야.

오래도록 추억 곱씹으며 같이 늙어가야지.

내년 즈음, J랑 같이 캐나다 단풍 구경 하러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