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꼭 시간이 흘러서야,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걸까. 그땐 왜 알지 몰랐을까.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다.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제보다는 조금은 나은 나 자신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이렇게 위로해 본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어른"이라고 말한다. 나는 과연 어른일까.
20대까지만 해도 나도 그저 평범한 광화문 직장인이었다. 대학시절 광화문 사거리 근처 카페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나도 언젠가, 졸업하면 오피스 정장을 입고 꼭 저 높은 건물에서 카드 찍고 출근해야지!"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원하던 대로 광화문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녹록지 않았다. 나의 직장생활은. 그랬다. 난 처절하게 직장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걸 확실하게 인지한 때는 그로부터 5년 뒤였다. 동시에 내가 마음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 또한 절실하게 인정하게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 정말 어쩌려고 그만두냐고 만류했다. 직장이 있어야 시집을 간다.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야.라는 말을 들으니 더더욱 사표를 낸 게 잘한 거 같았다.
일단은 한국을 벗어나서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곧장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질렀다. 지르니 이제 갈 일 밖에 없었다. 나는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나의 한 달 간의 스페인여행은 시작됐다.
내가 묵었던 마드리드 숙소 앞 메트로 역 이름은 lalatina다. 그 역이 너무 익숙했기도 했고 그 이름이 너무 맘에 들어 스페인에서 돌아오고 나서 이 이름으로 메일 주소 새 계정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메일 주소의 라라티나가 무슨 뜻이냐고 궁금해하며 종종 묻는다.
나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탈피, 그런 류의 성질은 아니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잠시 거주하면서 느낀 점은 내 나라건, 외국이든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은 정말 똑같다. 단지, 낯선 곳이라는 역설적인 이점이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을 심도 있게 관찰 가능하게 한다. 내가 여행하는 이유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시골장의 풍경, 깔라마리와 추로스를 파는 가게의 아주머니, 아저씨, 평범한 동네의 오래된 카페에서 만난, 단지 여행객이라는 이유로 카페 콘 레체 한 잔 값을 대신 내주던 인정많던 사람들도. 이렇게 직업도, 나이도, 피부색도, 성별도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한다. 사랑도 일도 가정도 모든 일상들이 우리네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 인생은 어느 곳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구나. 내가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이다.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이런 깨달음 조차도 책에서 한 줄 읽은 것과 내가 경험해보고 느낀 감정 한 줄의 차이는 크다.
아침 8시가 좀 안되었을까. 아침햇살을 맞으며 산책하러 나섰다. 그러던 중 만난 바실리카 성당. 들어가자마자 오래된 역사의 채취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그 짙은 냄새에 빨려 들어갔다. 나 혼자 뿐이었고 그 순간 뭔지 모를 성스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뒤쪽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멍하니 맨 앞을 응시하니 갑자기 내 마음속 이야기와 지난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니 그래야만 해야 할 것 같았다.
울었다. 그렇게 20여분을 흐느끼며 울었다. 지난 과거에 대한 속상했던 마음, 상처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뒤섞인 별의별 감정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훔치고 나는 내 가족에 대한 기도와 내 다짐을 마지막으로 그 성당을 빠져나왔다. 그곳은 그렇게 스페인에 있는 동안의 내 안식처가 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요즈음 자주 묻는다. "그때의 네 다짐은 잘 지켜지고 있는 거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마음과 감정을 알아채고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준다.
철이 없다. 여전하다. 아직도 철이 없는 걸 보니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때로는 모순적인 내 모습과 마음에 흠칫 놀라기 일쑤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도 답을 찾고 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물음을 던지고 답하고 다시 질문하고 생각하고 깨닫는, 이 과정을 지루하게 반복하다 가는 것이라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고 지난 수년간 지지리도 못난 밑바닥의 내 모습도, 초라한 내 모습도, 화려했던 내 모습도, 결국 나.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는 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진작 나를 내려놓았더라면 덜 상처 받고 덜 밑바닥에 빠지고 덜 초라하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에 한 없이 우울감과 절망에 빠졌던 날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내 스스로에게 구한다. 그런 치열한 과정 속에서 나는 어느덧 내가 모르는 사이 성장을 해왔음을 느끼고 그 희열은 내 삶에 큰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