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지 않는 즐거움

난 이런 사람이었다

by miu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집어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어맛, 나도 그런데!! 라며 무라카미 하루키와 나를 동일시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아주 맛깔나게 읽었다. 또 한 번 나는 에미코와 나를 동일시하며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나를 몰랐다. 작년부터인가 소비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시점상으로는 작년 파리에서 귀국하자마자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없어도 되는 물건은 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다.라는 감정이다. 하나씩 쌓이는 물건들이 이제는 짐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평소 내가 쓰는 물컵은 하난데 왜 이리 많은 컵들을 내가 산 거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 요즘 아주 몸에 밴 습관은 천 원짜리 하나라도 이게 과연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산다. 이제는 단지 예쁘서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건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필요성과 가성비다.


함부로 버리지 않기 위해 함부로 사지 않는다. 기특하게도 나만의 이 공식을 현재까지는 아주 잘 지키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삼십 년 넘게 살면서 간직할만한 추억의 물건들과 옷들이 많았는데 너무 함부로 버리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도 그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잘 써왔다면 일부는 느낌 있는 아주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을 테고 옷들은 하나같이 요즘엔 찾기 어려운 패턴과 디자인에 빈티지스러움까지 더한 힙한 옷들이 됐을 텐데 말이다. 이건 참 아쉽다.


얼마 전 옷장과 서랍장을 다시 한번 깔끔하게 정리했다. 자주 소비하지 않아 좋은 점은 물건들을 자주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빨랫감도 속옷과 수건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정도로 확 줄었다. 내가 좋아하는 파우치 안에 속옷을 가지런히 반듯하게 정성스럽게 고이 접어 넣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리본 파우치를 바라보다 아, 예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소박함이 주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그 맛을 알게 되면 절대 놓지 못한다.


도시녀였다. 이전의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차가운 도시 여자처럼 보이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 그땐 그랬다. 세련됨이 그리 좋았다.


촌스럽다. 지금의 나는. 근데 이 촌스러운 내가 얼마나 좋은지. 와,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정말 몰랐다. 가장 큰 변화는 옷을 더 이상 사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 사고 있지 않다가 아니라 사고 싶은 욕구가 전혀 안 생긴다는 말이 더 맞겠다. 희한하다 희한해. 확실한 건 이젠 예쁜 옷엔 도통 관심이 없다.


5월이었다. 여름에 입을 반팔 티셔츠를 좀 사야 되겠다 싶어 초중고등학생들이 자주 간다는 길거리 옷가게에 들어갔다. 고민하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기준은 간단했다. 목 라인이 시원시원하게 빠질 것. 반팔 일 것.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색깔별로 그레이, 인디핑크, 민트 이렇게 세 가지 색상을 골랐다. 가격은 개 당 9,900원. 신축성도 있겠다. 길이도 엉덩이 아래까지 덮어주겠다. 이만하면 최고다.하며 계산했다.


올여름 내내 3만 원에 이 세 가지 색상의 반팔 티셔츠를 번갈아가며 입으려니 소위 뽕뽑을 생각하니 내 소비가 더더욱 합리적이라 느꼈고 기분이 그냥 좋았다. 이것 또한 작은 행복 아니겠는가. 행복은 다름 아니다. 순간순간 내가 느끼는 기쁨, 설렘, 환희 이런 모든 감정들의 총합이나 경험 아닐까. 내가 기쁘고 만족했음 됐다.


이런 생활습관이 익숙해지고 편하고 내 삶에 크고 작은 만족감을 주다 보니 겉모습은 내게 부차적이 되었다. 오히려 내 내면의 자아에 집중하는 시간이 확연이 늘어났고 겉모습에 치장하는 시간이 줄다 보니 시간적 여유는 물론이거니와 사소하게 신경 쓸 일 또한 줄게 됐다.


책과도 둘도 없는 절친이 됐다. 원래 책을 끼고 살았지만 부쩍 더 깊은 사이가 된 듯하다. 소비하지 않는 즐거움이 책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하겠지만 소비하지 않은 즐거움이 크면 본질과 내면에 집중하게 되면서 책과 훨씬 더 가까워지게 된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나를 유혹의 늪에 빠뜨리는 물건이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파우치다. 예쁜 파우치만 보면 환장을 한다. 아직까지도 소녀처럼 설렘 가득안고 아트박스에 종종 들르는 이유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내 스타일의 파우치를 기어코 발견하고야 말았다. 사이즈도 크고 오 좋은데! 딱 내가 찾던 거라며. 에잇, 이쯤하나 못사나 내가 행복해지는데... 옛다, 7월 나름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파우치 하나에 내가 이렇게 기쁠 일인가. 그렇다 난 이런 사람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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