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즐거움

청량하다

by miu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긴 방황 끝 일 외에 심적으로 꾸준히 할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건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일 것.이었다. 지치지 않으려면 무조건 좋아해야 하는 일이어야만 한다. 브런치 피드를 종종 보면서 공감하고 위안을 받았었다. 문득 며칠 전 나도 브런치 작가 신청해볼까.싶었다. 동시에 내 손은 이미 노트북 키보드에 가 있었다. 바로 글을 써서 작가 신청을 냈다.


글은 내 삶의 일부였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기자 앵커를 준비했고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각기 다른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과 정말 즐겁게 치열하게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다. 나는 글 쓰는 기자가 될 것이고 티비에 나와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가 된 내 모습을 매일 아침 상상했다.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고 설레고 재미있어하는 일은 글쓰기.라는 걸 말이다. 진작 글을 써볼 걸. 대학시절에는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내가 글을? 언젠가 나도 나만의 책을 내고 싶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나서 글쓰기는 점점 내 삶의 뒤로 멀어져 갔다.


방송사, 신문사 가리지 않고 지원했고 언제부터인가 지원하는 곳마다 필기에 다 합격했다. 실무면접이나 최종면접에서 현직 데스크들이 내 글을 칭찬했을 때, 인정받은 기분이었고 글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글쓰기 연습을 위해 노력했던 건, 글의 서두는 무조건 재밌을 것. 문장은 최대한 짧고 군더더기 없을 것. 주장이 있으면 반드시 근거를 댈 것. 나만의 비범한 시선과 시각일 것. 딱 이 네 가지였다. 수천 개의 글 중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내 글이 합격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다른 색다른 무언가가 글에 필요했다. 효과가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 내 놀이터였다. 대학 시절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았을 정도로 숱하게 교보문고를 드나들었다. 서점과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에 파묻혀 살았다. 책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과 기쁨이 너무 컸고 내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세 개씩 글을 완성하고 고쳐나가고 또 저장했다.


당시 작문과 논술을 통과했어야 했는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소재로 어떤 맛깔난 글을 써볼까.를 생각했다. 재미있는 글감과 소재를 찾고 노트에 메모해두고 습작한 글들이 적힌 내 노트가 족히 10권은 되었다. 내겐 소중한 보물상자와 같아서 재작년까지 보관했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서울 집을 정리하면서 짐 같아서 대학시절 공부했던 두꺼운 전공서적과 교양서적, 노트들을 모조리 정리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후회스럽다.


돌고 돌아 10년이 지났다. 내게 설렘은 주는 일. 그건 바로 글이었다. 왜 그동안 잊고 살았을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늦지 않았다. 뭐든 늦은 때란 건 없어. 다시 차분히 내 생각을 꾹꾹 저장해보자.마음먹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요 며칠 새 진정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꿈 많던 순수했던 스무 살 의 나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지만 경험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대학교 1학년은 무조건 휴학시키자, 대신 그들이 넓은 세상에 나가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그걸로 점수를 매기자."라고 했다고 한다. 격하게 공감했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경험이 주는 힘을. 넓은 세상에 나가 보았고 부딪혀 보았고 넘어져 보았고 치열하게 고민해 보았고 삶을 배웠고 느꼈고 일어서도 보았다. 그걸로 점수를 매긴다 한다면 난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 선택이긴 했지만 퇴사하고 롤러코스터 같기만 한, 결코 내 맘 같지 않게 되는 내 인생에 대해 많이 자책했고 나를 미워했었다.


하지만 지나 보니 그 모든 과정과 경험은 나에게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자원이 되었다. 지금의 내가 곧 스토리고 브랜드다. 누구도 날 대신할 수 없듯이 나만의 도자기에 맘껏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고 굽고 싶다. 그것이 내가 글을 시작한 이유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청량감 때문이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뭐랄까. 열심히 땀 흘리다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미지근한 상태보다는 조금은 차가운 물로 샤워를 막 하고 나왔을 때 그 설명할 수 없는 청량감과 개운함. 그 설명이 딱 알맞다. 글을 쓸 때만큼은 온전하게 내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고 노트북 키보드의 딸깍딸깍 타자 소리도 좋고 다 좋다.


자, 그럼 이제 너만의 도자기에 색을 입혀볼까.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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