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때 어느 계절, 한 달 정도 반복재생해서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투애니원의 아돈케(i don't care)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땐 가사보다도 그저 흥겨운 멜로디가 좋아서였다. 이 카페 주인이 나와 비슷한 년배인가.싶을 정도로 선곡이 기가막히다. 2000년대 익숙한 그 시절 그 노래들이 쉼없이 나오고 있다. 노래와 함께 그 시절 나를. 회상해본다.
보통 이렇게 길게 카페에 앉아 있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웬일인지 한 시간 반을 넘어가고 있다.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자각까지.
완벽하게 화장을 하지 않은 지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떤 자신감에서는 기어코 아니고 낯선 곳에 내려와 있으니 자유로움을 한 껏 만끽하고 있다는 설명이 적확하다. 고로 민낯은 내게 자유인 셈이다. 내가 말하는 민낯이란 엄밀히 말하면 선크림까지 바른 상태인데, 색조화장은 일절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민낯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때가 1년 정도 있었고, 서울에서 바삐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땐 예의상.이라는 이유로 색조화장을 더해 아이라니까지 덧칠하는 상태의 완벽한 메이크업을 했다.
그런 일에서 벗어나자 나는 역시나 주저없이 다시 민낯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차제에 먹는 것 조차 가리지 않고 먹었던 터라 내 몸과 내 피부는 그와함께 망가져 가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원래 얼굴에도 손을 잘 안대는데, 뾰루지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내 심기를 자극했고 미련하게도 나는 지지 않겠노라며 짜고 만지고 상처내고 기어코 피를 보고서야 멈췄다. 분명 내 마음이 온전치 못하다는 확실한 징후이기도 했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늘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내 바람과는 달리, 낯선 곳에 내려온 지금도 자연과는 함께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어떨땐 논리적이지 못하게 민낯도 어찌보면 자연상태 아니던가.하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느는 건 근거없는 자신감과 논리랄까. 그런 나를 뒤로하고 뒤뚱뒤뚱 나는 내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앗, 참 눈썹은 꼭 그린다. 아무렴 모나리자가 되는 그런 무례함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말끔히 세수를 하고 스킨을 탈탈 털어 얼굴에 푹하고 발라주고 선크림을 이마에서부터 목덜미까지 구석구석 빡빡 발라주는 것. 그다음 눈썹을 갈매기모양으로 그려주고 작디 작은 귀걸이를 하나 걸고 나갈 준비를 마치는 게 심심하지만 무심하기까지한 현재 내 작은 일상의 루틴이다.
어떨 땐 엘레베이터 속 내 민낯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얼마 전엔 쎈언니.같다,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엄마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토시 하나 안틀리고 쎈언니. 부잣집 엄마) 쎈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부잣집 엄마같다.는 어찌해야 그리 보이는건지. 게다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요즘엔 나를 꾸미는데에는 일도 관심이 없어서 같은 옷을 매일 같이 입고 있는 중이다(물론 자주 빨래한다). 추측해보건대, 최근 자른 단발머리가 한 몫했던 것 같다.
무튼 그 말 끝에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러우신데...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반전의 매력이라고 기어코 칭찬일 거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피부가 백옥같지는 않아서 까무잡잡한 피부라서 민낯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한 외모인데, 지금은 그마저도, 외모에 관해서도 참으로 관대한 살가운 내가 되었다.
오늘도 역시나 민낯인 오늘,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나의 준비는 시간적인 면에서도 효율이 참 크다는 생각이다. 가끔 민낯인 상태가 모든 걸 내려 놓는다.라는 의미와 동일시 될 때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면 지금 내 생활과 내 마음가짐과 태도가 민낯인 상태일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이유에서이다.
마침 아이라이너도 다 썼던 탓이 크다. 원래 같으면 하나 살텐데 돈이 없어서, 아까워서는 아니고 이참에 다시 민낯으로 활보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유지되고 있는 중이며 이런 생각이 영구적일리도 없다. 또 메이크업을 하고 싶은 날이면 나는 거침없이 아이라인을 사수하러 갈 것이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민낯을 보다, 민낯의 용도. 민낯의 쓸모.라는 단어가 번뜩였고 내게 민낯의 용도란 쓸모란 나를 자유롭게 하는 도구 내지 나라는 사람을 포장하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 때로는 나의 이 과감없는 민낯처럼 나를 드러내는 일, 솔직해지는 일, 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과대포장하는 일이 없게 하는 시금장치.가 아닐까.한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성장하는 중이다. 가끔 아니 종종 아주 자주 생각한다. 나는 아직 멀었다...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나를 데리고 산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잘나지 않아도 그럼에도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그러므로 스스로 초라해지지 말자.고
내 삶은 언제부터인가 통찰과 성찰의 연속이다.
어맛, 얼굴을 쓸기다 눈썹까지도 쓸어버렸다. 반쯤 모나리자가 됐다. 아무렴 어떤가. 누가 날 보던가. 또 보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