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해 먹고 사냐고.묻는다면 애호박 볶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집 반찬으로 애호박 볶음을 이렇게도 자주 해 먹었던 적이 있었나.싶다. 이 애호박 하나에 푹 빠져버렸다.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반찬을 전혀 해 먹지 않았던 터라 최근의 나의 집쿡이, 결심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다 오늘도 냉큼 두 개를 집어왔다.
일주일째 애호박 볶음을 진득하게 지겹지 않게 아주 잘 먹고 있는데, 내가 애호박을 대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도마에 애호박을 올릴 때 비장한 긴장감마저 든다. 먼저 깨끗하게 씻어낸 애호박을 부채꼴 모양으로 가지런히 썰어낸다. 덮개가 있는 작은 웍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열이 오를 때까지 기다린 다음, 썰어놓은 애호박을 넣는다. 집에 새우젓이 없는 관계로 대신 액젓을 한 스푼 정도 넣고 다시다를 적당히 툭 넣고선 덮개를 덮어 중불에 볶아낸다.
정말 별거 아닌데 완성되고 나면 왜 그리도 맛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호박에서 나온 물과 기름과, 조미료 맛이 한데 섞여 나온 자작한 국물에 밥 한 숟가락 비벼먹으면 이 또한 기가 막히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그 꾸릿한 액젓의 냄새도 좋으며 애호박 자체의 식감도 좋다.
문득 애호박을 자주 썰다(매끼 먹을 때마다 그때그때 애호박 볶음을 하기 때문에) 또 애호박 볶음을 집어 드는 내 젓가락질을 바라보다. 문득 내 삶이 밀려왔다. 전혀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이렇게 사소한 내 주위의 사물들에서 내 인생을 생각하고 바라볼 때가 자주 있다. 말 그대로 문득. 혼자인 나.를 떠올렸고 갑작스레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워낙 익숙한 것이며 당연한 고독이라 여기고 살고 있지만 가끔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가 있다. 그날이었다.
그것도 잠시, 오호라 지금 고독과 외로움이 밀려오고 있단 말이지. 자각하기 시작했고 이 감정들이 날 그대로 잠식하게 둘 수 없다며. 서둘러 밥을 먹은 뒤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선 노트북을 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내 자신이 생각의 블랙홀 속에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철저한 몰입의 상태가 된다. 집 안과 창문 밖 너머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진공상태인 우주에 나만 덩그러니 떠있는 듯 고요하다.
깊은 몰입감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개운하고 가벼우며 산뜻하기까지 하다. 이와 함께 무언가를 꼭 해낸 것만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자아도취적 성취감이 솟는데 그 쾌감은 꽤 짜릿하며 오래 지속된다. 내 감정과 상태와 태도를 오롯이 글로 쏟아낸다는 것. 이내 내 생각과 행동의 사특함마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문장 끝 마침표에서 오는 크고 작은 성취감이 내 온몸을 감싸는 경험까지도.
뜬금없이. 그것도 생뚱맞게. 문득 애호박을 먹다 느낀 이 소회는 무엇이란 말인가. 애호박에서 고독을 떠올리다 못해 이내 글을 쓰는 이유로까지 이어지는 이 앞뒤 안 맞는 생경함이란. 그러나 그것이 크든 작든 내 주변에 있는 일상의 사물에서든지 그 모든 것에서 삶을 느끼고 배우고 깨닫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요즘 푹 빠져버린 애호박으로 인해, 나의 당연한 고독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자각하게 됐다는 건, 내겐 반가운 일이다.
인생의 고독과 외로움을 당연하게 느낀 지, 내 친구로 받아들인 지 꽤 오래되었다. 당연한 고독.이란 이 말속엔 고독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담담하고 의연한 태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듯해서 애정이 간다. 고독과 외로움은 하나라서 이 둘은 늘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가 내가 그들을 진정 친구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우리가 진짜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하듯, 추적추적 내리다 금세 그친 가을비처럼, 그렇게 그의 존재를 이번에도 여실히 내게 확인시켜주고 갔다. 그렇게 글 하나를 완성하고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나 이제 너희들과 진짜 친구가 된 게 맞거든! 오늘 하루도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