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by miu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이소라 언니의 Track 9.의 노래 가사다. 주옥같은 가사들과 소라 언니의 몽환적인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상처 받은 내 영혼을 치유해준다. 가사 그 자체가 삶이고 철학이라서 반복해서 듣고 또 듣게 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책을 반납하러 학교 도서관을 가야 했는데 평소 같으면 분명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을 텐데. 책이 족히 8권은 돼 무거우니 차를 가지고 가자.했었다. 책을 무사히 반납하고 학교를 빠져나오는 것 까지는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고선 불과 10여분 뒤. 사고가 났다. 지나가다 보인 타일 가게에 들러 견적만 잠깐 물어보고 나오자.며 차를 그 가게 앞에 잠시 세웠다. 차에서 나오는 순간, 내 차는 천천히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놀란 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 차를 멈추고자 안간힘을 쓰기도 내 온몸으로 내 차를 막아서고 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급격한 내리막길이었기에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패닉에 빠졌고 당시의 상황은 꽤나 심각했었다. 그렇게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나.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아니 죽는구나.였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장면이 떠오를 때면 온몸이 소스라치게 놀라고 눈이 질끈 감긴다. 평소 잘 채우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걸까. 그럴리가 없는데. 정신줄을 놓은 게 아니라면, 무언가에 홀린게 아니라면... 그런게 아니라면 그날의 사고는 어떻게 설명이 안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 평소 운전습관으로 핸들이 확 돌아가져 있었고 내려가면서 대각선 방향으로 바퀴가 돌아 움직이면서 폐가구로 내놓은 목재들 더미 사이로 차 뒤가 받으면서 차가 멈추게 됐다. 전에 내차를 탄 아빠는, 주차할 때 핸들을 꺾어 놓는 건 안 좋은 운전습관이라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고치라고 하셨었는데, 놀랍게도 나의 그 안 좋은 운전습관이 날 살렸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려보니 차는 그렇게 멈춰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구급차가 왔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긴장이 풀렸는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쳐지고 손발이 떨려왔다. 차차 제정신을 찾고 온 몸으로 내 차를 막은 것 치고는 외상이 무릎과 다리, 팔 군데군데 쓸김의 상처와 피멍들 뿐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완전히 안도했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들이 말했다.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무슨 수로 아가씨 혼자 그 차를 막아섰는지. 운이 안 좋았음 아마 차에 깔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모두들 천운이라 했다.


그 이후 종종 마음의 우울이나 불안을 느낄 때면, 삶이 외로워질 때면 그때의 그 사고를 일부러 소환하곤 한다. 그때 자칫 잘못되었음 어쩌면 난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죽었을지도 모르는 내 삶, 덤으로 살고 있다면 선물로 살고 있다면 내게 다시 주어진 이 시간들을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다짐했다.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게 된 이유다.


내가 실존으로 존재하기에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죽음을 완전히 달리 인식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난 내 삶에 대해 아주 많이 너그러워지게 되었다.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날 내가 겪었던 일처럼, 결코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사고는 예기치 않게 왔고 결과만 달랐을 뿐이다. 지금으로선 그 사고를 운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내가 그 상황과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앞으로는 늦은 것은 절대 없다고. 앞으로의 인생은 두려워도 말고. 도전해보자고. 쫄지 말자고. 당당하게 맞서 보자고. 호기롭게 살아가 보자고. 죽음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작년 파리 살 때의 일이다. 자주 걷던 길에 유명한 생슐피스 성당이 있는데 그날도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다시 볼 겸 그곳을 들렀던 참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엄숙한 성당 안 분위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서다 이내 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꽤 많은 수의 내 또래 혹은 나보다 한참은 어린 젊은 친구들이 슬픔에 가득찬 모습으로 미사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한 노신사는, 며칠 전 갓 스무 살이 된 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몰다 사고가 나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방금 본 장면은 그의 장례식이라고 했다. 그날은 새해를 맞이한 지 며칠 되지 않은 한 겨울의 1월 초였고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새해의 기쁨에 한 껏 부풀어있었을 텐데. 그 청년은 자신이 며칠 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안타까운 사연에 내 마음마저 엄숙해졌다. 그러면서 나도 그랬듯,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곳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내내 우수에 찼고 한겨울 찬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난 죽음.을 매일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또 언젠가는 분명 죽는다.는 이 간단한 공식을 매일 기억하고 인지하고 깨닫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하루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으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몸과 정신 전체를 잠식해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죽음을 인식하는 것. 살아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내가 내 삶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때로는 내 삶에 두려움이 없고 거침없는 용기도 생기고 때로는 한없이 겸손해지고 겸허해지고 엄숙해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난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딱 한 번 주어진 내 삶에게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하고 상냥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이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왔다가는 이방인.이라며 고로 원래부터 내 것은 없었다.며 때로는 거친 삶의 이 무게 앞에서 초연함을 배우고 다시 일어선다.


언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질 나와 내 영혼이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이 된 듯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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