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코 앞엔 천변이 있다. 최근 이사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건 도심 속 작게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일하는 곳(걸어서 15분 정도)과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것. 평소 다니던 수영장(코로나가 종식되면 바로 달려갈 테다)과 가까울 것. 딱 이 세 가지였다. 운 좋게도 새로 이사한 집은 내가 정한 조건과 꼭 맞았고 집 자체도 나와 합이 아주 잘 맞는 듯하다.
천변 둘레길이라는. 좋은 코스가 생기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도 급격히 줄었고 그 자리를 걷기가 대신하게 되었다. 의도했던 대로 매일 천변 둘레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상념에 젖기도 하고 흐르는 물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풀내음 새를 벗 삼아 그렇게 걷고 또 걷는 일상이 됐다. 걷다 보니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으며 가을이라는 계절을 새치기 한 이 겨울의 쌀쌀한 찬바람이 밉지 않고 반갑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주말에도 역시 일(스케쥴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차있는데)이 있어 그 모든 스케쥴을 요즘은 걷기로 해결한다. 꾸준히 의식적으로 의도대로 걷기 시작한 때부터 토, 일 각각 만보 이상은 기본으로 걷고 있으며 하루 12km 이상은 훌쩍 넘으니 주말 다 합치면 약 30km는 걷는 셈이다.(만 보이상 걸으면 내가 이용하는 pacer 앱은 팡파르를 띄워준다. 이 또한 작은 성취감이다)
걷기 예찬론자로서, 주말엔 도착지까지 1시간 여 걸리는 코스로 시작을 하는데,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 도착지(카페인데 토요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이곳에서 미팅이 있다)에서 갖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으며 뜬금없는 자신감까지 생기며 생기가 돋는다. 잘 다듬어진 천변길을 걷다 보면 복잡했던 잡념은 사라지고 눈과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내 온몸의 오감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까지.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분명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흙을 밟고 땅을 밟는다는 것. 이 자체가 곧 자연이며, 나와 같은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땅을 딛고 밟아 발걸음을 힘차게 앞으로 내어 나아가는 그 순간, 날 철학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 눈은 앞만 바라보고 걷지 않으며, 앞, 뒤, 양 옆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눈에 담느라 바빠진다. 바람엔 온몸의 생기가 되살아나며 내 몸속 온갖 기능이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듯 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야릇한 경험을 매번 느낄 수 있다.
그런 자연 앞에서 잡념이 날 지배 할리 만무하다. 복잡했던 잡념과 심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난 다시 삶에 대해 생각하며 그 시절 니체, 고흐, 쇼펜하우어, 카뮈 등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떠올리며 나도 그들이 겪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고뇌를 겪고 있노라며 그들과 나를 동일시하곤 한다. 그때만큼은 난, 내 안의 나와 철저히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내 안의 나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내겐 내 안의 나를 구출한다는 얘기도 되는데,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 요즘의 기분은 안녕한지. 앞으로 또 어떤 자세로 내 삶을 대해야 하는지. 최근 겪었던 슬픔, 상처는 이제 조금은 아물었는지. 오늘 퇴근 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을 마주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지. 너만의 색깔은 무엇인지. 헤어스타일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떨지. 최근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누가 그렇게 그리운지. 널 다치게 한 사람은 없었는지. 요즘의 네가 그렇게 기특하고 대견할 수가 없다고. 정말 잘 해내고 있다고. 등등 이렇게 온갖 질문을 내 안의 나에게 던지고 답한다.
내 안의 나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국 나와 내 안의 나의 모습이 선명해지고 분리된다. 삶의 통찰은 결코 비범한 것만이 아니며 이렇게 늘 우리 일상 속에 존재한다.
내 안의 나를 구출하는 연습을 수시로 하다 보면 내면의 힘과 에너지가 생기는데 이는 나만의 스타일과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만 봐도 자신만의 스타일과 감성과 아우라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아우라란, 범접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로 그 사람 그 자체이다. 결국 내 안의 나를 구출한다는 것은 나만의 스타일을 안다는 것이기도 하며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연습을 자주 한 사람은 결코 남들의 시선이나 말 따위에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요즘 의도적인 걷기를 통해 나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와 내면의 나에게 집중하는 귀한 시간이며, 그 몰입의 세계엔 시공간의 경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의 상태, 무의 상태의, 심연의 저 너머로 깊이 빠져들어가는 일이다.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존재하는가. 고로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일, 내 안의 나를 언제든 수시로 구출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