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이야기

by miu

어맛! 세제와 섬유유연제가 다 떨어졌네. 사야겠군. 빨래통에 빨랫감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니 오늘은 그냥 둘 수 없어 마트로 향했다. 액체세제와 섬유유연제의 그 무게감이 싫어 이 두 개만큼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데 깜빡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섬유유연제를 고르는 일은 내게 늘 선택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결국엔 무슨 향 무슨 향이라고 쓰인 그 문구만 보고, 당기는 걸 확 집어 든다. 옷에서 풍기는 그 냄새란, 나에게서 혹은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그 섬유유연제 향은 생각보다 짙다.


탈수까지 완료된 빨래를 탈탈 털어 걸어 널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빨래 일상이지만 새로 바꾼 향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코튼플라워 향이라는데, 향에서 뽀송뽀송한 냄새가 났다. 빨래를 널어놓은 날은 집 안에도 그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간다. 널어진 빨래들 사이를 지나갈 때면 그 향은 더 짙어지는데, 오늘은 유독 새로 바꾼 이 향에서 어릴 적 향수가 느껴졌다.


어릴 적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고 난 그런 엄마를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퇴근 전까지 말끔하게 해 놓았었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시는 부모님을.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 싶었고, 기분 좋게 해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늘 고맙다고 날 꼭 안아주시며 엉덩이를 두들겨 주셨고 입에 닳도록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게 그리도 좋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에게 빨래는, 이렇게 사랑이었고 그 시절 열한 살 소녀의 순수했던 마음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새로 바꾼 코튼플라워 향이 낯설지 않았다. 엇, 이거 예전에 우리 집에서 쓰던 향이랑 비슷한데? 와, 옛날 생각나. 그러면서 이십 년은 훌쩍 지난 그때 내가 살던 그 집과, 그때 세제를 넣고 동작을 누르고 그게 완료되면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굼+탈수를 마치는 그 과정까지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게 아닌가. 요즘에는 드럼세탁기가 너무 흔하게 되었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말 그대로 물 호스에서 탈수 물이 빠지는, 세탁 소리도 꽤 큰 소위 옛날 세탁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오늘 또, 빨래를 하다 그 시절을 문득 그리워했다. 한여름 뙤약볕에 내리쬐는 햇살에 자연적으로 말려진 빨랫감을 참 좋아하는데 특히 빳빳하게 꼬장꼬장하게 말려진 수건을 갤 때, 옷감을 갤 때, 아주 작지만 소소한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서 차곡차곡 갠 바짝 말려진 수건에 잠시 내 얼굴을 묻고 섬유유연제의 향을 음미한다.


시끄럽기는 했어도 세탁을 수동으로 눌렀을 때 콸콸콸 물 나오는 소리, 헹굼 할 때의 물과 옷감이 동시에 찰싹 부딪히며 돌아갈 때 나는 소리, 탈수 기능을 눌렀을 때 호스로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 탈수되는 힘으로 인해 세탁기 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까지도. 조금은 그립다. 아마도 내가 그리운 건, 그 시절 빨래가 널어진 우리 집 풍경과 그 시간과 추억이 일 것이다.


그 시절 내가 그랬듯, 빨래는 내겐 여전히 사랑이다. 내가 내 옷을 빨래하는 건 귀찮아도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지만, 내가 타인을 위해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너는 일은 굉장히 특별한 일이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일은, 세탁기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한 시간 남짓 빨래가 다 될까지 기다렸다 널고 그 집을 나서면 기분이 깔끔하다. 퇴근 후 조금이나마 피곤함을 덜어드리게 하고 싶은 내 딴에는 투박한 사랑 표현인 것이다.


연애 시절, 당시 남자 친구 집 욕실에 잔뜩 쌓이다 못해 널브러지기 까지 한 빨랫감을 보고선 망설임 없이 빨래를 돌렸다. 다 된 빨래를 사방이 시원하게 뚫린 베란다에 탈탈 털어 널었던 그때의 바람과 풍경과, 새들의 지저귐까지, 베란다까지 살짝 넘어오는 녹색의 푸른 나무들까지도 그 장면이 생생한데 그러면서 일하고 있을 그를 생각했고 내친김에 빨래로 시작해 방청소와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해 놓았다. 그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진한 사랑 표현 중 하나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희한하게 빨래처럼 당연한 일상에 사랑이 담기면 그게 일이 되지 않고 귀찮지 않다. 나의 수고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타인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그런 류의 뿌듯함과 만족감 때문일 것이다. 1인 가구로서 살고 있는 요즘의 나의 빨래는, 순전히 오롯이 나를 위한 빨래가 됐지만 치환해보면 이 또한 날 위한 일이기에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아쉬운 건, 개인적으로는 나를 위한 빨래보다는 타인을 위한 빨래를 할 때, 그 뿌듯함이 훨씬 크다는 건데 잠시 미래를 그려보자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하는 빨래는, 언제나 그랬듯 그 자체가 진한 사랑일 것이며 진한 애정일 것이다.


빨래를 하다 문득. 오늘도 그 시절의 향수에 젖었고 이런 향수라면 언제라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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