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이야기

by miu

엄마 거의 다 도착했거든. 언니랑 주차장으로 내려와. 초등학교 소풍 전날이면 어김없는 엄마의 이 전화 한 통에 언니와 나는 헐레벌떡 나가느라 야단이었다. 소풍 전날은 각자의 소풍가방에 담을 간식과 음료를 마음껏 고르는 날.로 우리에겐 의례행사 같은 것이었는데, 마치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기다려지고 설레는 것처럼, 소풍 이브 역시 그랬다.


나는 짙은 파란색에 앞에는 적당히 큰 흰색 주머니가 있는, 지퍼가 아닌 쭉 당기면 하나로 모아지는 소풍가방을 가졌었는데 어린 시절 소풍 하면 그 가방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 추억으로라도 간직할 걸.하는 내겐 아쉬움 가득한 가방이다.(언니는 빨간 리본을 단 키티가 부착된 민트색 가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소풍 당일, 가장 바쁜 사람은 엄마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에 넣을 고슬고슬한 흰 밥을 짓는 일, 계란지단을 부쳐내는 일, 햄을 볶는 일, 단무지를 자르는 일, 시금치를 삶아 무치는 일, 맛살을 볶아 내는 일. 김밥을 말기 위한 엄마의 사부작 소리에 어린 나도 잠을 깨곤 했다. 그러곤 엄마가 김밥 싸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보다, 꽁지 하나가 나오면 쏘옥, 재빠르게 집어 먹었고 그러면 엄마는 일부러 내가 있는 도마 앞에 꽁지를 가지런히 놓아주셨다. 갔다 와서 먹을 김밥까지도 넉넉하게 만들어 식탁에 두고 출근하셨다. 김밥은 이처럼 내게 단순한 김밥 그 이상의 의미이며 김밥하면 엄마. 요렇게 생각나게 하는 요술램프와 같은 것이다.


엄마표 김밥은, 마요네즈와 참기름과 맛소금, 참깨로 밑간 한. 고슬고슬한 흰쌀밥에, 김밥용 햄, 맛살, 단무지, 시금치, 계란지단이 전부였는데.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통에서 꺼내 든 엄마표 김밥은 진짜 꿀맛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하나 정도는 김밥 교환을 하기도 했는데, 내 입맛엔 역시 우리 엄마표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개인적인 취향은, 김밥은 꼭 맥콜(그땐 김밥과 맥콜의 조합이 콜라보다도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맥콜 맛이 원래 이랬었던가.할 정도로 입에 대지 못하겠다)아니면 암바사 혹은 밀키스.가 아니면 안 되었다. 거기에 홈런볼과 칸쵸는 내 최애 간식이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 가끔 사 먹곤 한다.


친구들의 김밥은 집집마다 달랐는데 어떤 집은 참치를 넣기도, 어떤 집은 깻잎을 넣기도 또 어떤 집은 당근을 넣기도, 오이를 넣기도 그리고 신기했던 건 밥에서 나는 냄새까지도 맛까지도 각기 전부 다 달랐다는 점이다. 엄마의 김밥은 군더더기 없었다. 그래서 그게 그리도 맛있고 고소했다. 엄마표 김밥을 곧잘 따라 해보기도 했는데 그 맛이 영 아니었으며 나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며.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엄마 밥이 그리울 땐, 김밥을 싸 달라고 한다.


엄마표 김밥이 환상적인 맛을 내는 이유를, 군더더기 없음에서 찾았고 엄마의 그 김밥은, 엄마가 연년생 두 딸에게 사랑을 가득 담아 전하는 그날의 특별한 선물과도 같았다. 엄마 김밥엔 그 모든 재료와 간들 중 어느 것 하나 결코 과하지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는데 딱 알맞은, 적당한, 기가 막힌 밸런스가 있었다.


그러기에 엄마 김밥은 내게 본질과도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곧 클래식함인데 이런 의미에서 내 일상도 내 삶도 엄마의 김밥처럼 아주 꼭 닮았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난, 엄마의 김밥을 본질 김밥이라 명명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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