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바사삭
알렌을 만나기 전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우리는 때때로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하며 모금활동을 하고는 했다. 티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발전되지 않은 날 것의 모습이었다.
전기도 없이 몇 시간을 걸어 도저히 식수라고 생각되지 않는 흙탕물을 길어다 마시는 일상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온 미스 알렌은 대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국제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이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인 셈이다. 그런 만큼 그녀는 본인이 얻고자 하는 것,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전에 알던 아프리카의 모습과 쉽게 연결이 되지 않고, 그 삶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그녀가 내 집에 오기 전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
인터넷 사용을 허가하면 안 된다.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여권 받아서 따로 보관해야 한다.
때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 선에서 흘려듣기로 했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사람들이 하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집주인이 여행 간 사이 집안의 온갖 귀중품을 들고 본국으로 돌아가려다 잡힌 도우미 이야기,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보내줬더니 다른 집에 취업해서 버젓이 일하는 도우미 이야기
휴가 보내줬더니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말 못 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신경질 부린 현장을 본 이야기
심부름을 시켰더니 돈을 떼어먹은 일 등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안 좋은 일들을 겪어본 경험이 늘어갈수록 점점 인간적인 대우보다는
그저 주종관계로 나는 돈 주는 사람 너는 돈 버는 사람으로 선을 긋게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마치 처음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 조언하듯이 나에게 많은 조언을 했고,
미스 알렌이 오기 전 나 역시 한 번 안 좋은 인연을 경험했던 터라
나는 내 집에서 일할 사람과의 초반 기싸움으로부터 밀리지 않기 위해 만반의 무장을 한 상태였다.
새벽에 도착한 그녀가 집에 도착하고 난 다음 날 일단 쉬게 하고
앞으로 일할 조건에 대해 정리한 표를 들이밀었다.
1. 일 년에 한 번 한 달의 유급휴가와 비행기 티켓
2. 일주일에 하루는 휴식한다.
3. 급여 협의
4. 스마트폰 이용금지
5. 3개월의 인턴쉽 기간 이후 비자를 발급해줄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리턴 티켓으로 돌아간다.
알렌은 선뜻 오케이 하면서 사인을 했고, 나도 우리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잠시 후, 그녀는 나에게 와이파이를 설정해달라며 왔다.
나는 계약서를 보여주며 스마트폰 이용금지 조항을 들이밀었고, 알렌은 당황한 나머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자마자 눈물바람이라니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왜 우느냐고 묻자. 그녀는
나는 성인이고, 내가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했다. 우간다에 있는 가족들과 자유롭게 연락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인터넷을 제한했던 이유는 일단 주위의 다른 집에서 그렇게 하고 있었고, 일할 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기 싫었으며, SNS를 통해 나의 사생활이나 아이들이 노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제한하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를 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굳이 인터넷을 쓰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장 내 눈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알렌을 보고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4번 항목에 대해 수정하게 되었다.
내가 인터넷 사용과 관련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이것이 지켜진다면 인터넷을 허가하겠노라 했고 이 말은 곧 지켜지지 않으면 인터넷을 다시 제한하겠다는 뜻임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협상이 끝나고 나는 그녀의 LG 휴대폰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주었고
미스 알렌의 휴대폰 벨소리와 함께 내 편견은 바사삭 무너졌다.
알렌의 벨소리는 왕좌의 게임 ost 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편견이 실제로 쨍하고 부서지는 느낌이 났다.
그녀는 나와 같았다. 우리와 같았다.
물을 긷기 위해 수십 리 길을 걷지도 않고,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는 평범한 집에 살고,
똑같이 일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하며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보통 사람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그녀를 진정한 친구이자 동료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왕좌의 게임 새로운 시즌이 나왔을 때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