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와 같이 어린이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많은 사람들이었다. 밖에서는 철거 공사가 한창이라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도서관 문을 닫는 순간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고요함이 감돌았다.
조용하게 모두가 책에 집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수지도 어느새 조금 더 얌전해져,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공기에 녹아들었다.
수지는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스스로 책 몇 권을 뽑아 원하는 자리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책 골라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 때문일까. 그 속에 있으니 수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책으로 향하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책을 고르고 얌전히 앉아 읽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책을 몇 권 골라 읽으며 함께 조용한 시간을 즐겼다.
독서가 취미인 나는 평소에도 매일 책을 읽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니 왠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도서관을 찾은 게 꽤 오랜만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더 편안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다.
수지는 내가 옆에 없어도 마음에 드는 자리에 혼자 앉아 책을 읽었다. 집에서 쉬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로 책에 몰두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조금 멀찍이서 몰래 지켜보며 속으로 큭큭 웃었다.
그런 수지는 나만 귀여워 보인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서관에서 봉사하시던 어르신도 수지 앞에 다가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참을 지켜보다 가셨다. 작은 아이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모습이 어르신 눈에도 사랑스러워 보였나 보다.
사실 수지는 아직 한글을 완전히 읽을 줄 몰라 글자를 읽었다기보다 그림을 보며 책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책 속 그림도 하나의 언어이고, 글자를 몰라도 그림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책을 읽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수지는 집에서 책을 읽을 때도, 내가 읽어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림을 보며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더 좋아한다. 실제 책 내용과 수지가 말하는 이야기가 달라도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상상한 대로 책 내용을 말하는 과정 자체가 아이가 책을 즐겁게 대하는 방식이고, 어쩌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수지는 책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차곡차곡 키워가고 있다.
도서관에서 한참 책을 읽던 수지는 갑자기 나에게 와 책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엄마, 이거 엄청 재밌어. 봐봐."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내미는 수지가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알겠어, 읽어볼게." 하고 수지가 준 책을 펼쳐보았다.
각 나라의 문화가 지도처럼 표현된 책이었는데, 팝업북처럼 종이가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구조라 더 재밌었나 보다. 그 책을 들여다보며 신나 했을 수지를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 있었다. 나는 나대로, 수지는 수지대로 같은 공간에서 각자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정말 평온하고 행복했다.
막상 집에서는 수지와 이렇게 오래 책을 읽기 어렵다.
책을 조금 보다 보면 금세 다른 놀이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책만 있는 도서관에 오니, 그 공간의 기운 때문인지 수지는 다른 건 생각도 안 하고 온전히 책에만 집중했다. 그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나중에는 내가 "이제 가자"라고 말해도, 수지는 더 있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시간이 그만큼 즐거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렇게 도서관에서 한참 책을 즐기고 나왔다. 말 그대로 즐긴 시간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었다기보다, 책 속으로 푹 빠져 책과 놀고, 책이 이끄는 대로 손잡고 걸어 다니다 나온 느낌이었다.
수지와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은 참 행복했다.
책은 우리 안의 여러 영감을 깨우고, 잠들어 있던 생각을 꺼내주며, 다양한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책을 읽고 나면 마음과 생각이 한층 더 활발해지고, 시야가 넓어지며 깊어진다. 책을 통해 새로움과 다양함이 스며들어 내면이 풍성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책이 주는 좋은 기분과 마음을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어 더욱 감사하고 행복했다. 앞으로는 도서관에 더 자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