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어른으로 살기
누구에게나 커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의 꿈의 크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체념과 포기의 과정이다.
대통령, 경찰, 가수, 영화배우 등 희망만으로 꿈을 재단하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집안 형편, 성적, 재능, 상황 등 주어진 현실에 맞추어 어릴 적의 꿈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과정을 견디어낸다. 어쩌면 그렇기에 어른들은 꿈이 허황됨을 애써 미리 알려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체념과 포기의 순간이 찾아오는 시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러한 과정을 이미 겪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반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꿈만 좇는 이들을 이상주의자 혹은 몽상가라고 부른다.
우리는 쉽게 변하지 않을 일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게 되었으며,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일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되었다. 싫은 사람이나 상황이 있어도 어릴 때처럼 티를 내지 않고 표정을 숨길 줄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하겠다는 어린 날의 결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남들 하는 대로 남들 하는 만큼 하기에도 급급하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그저 영위하는 것에 관성이 생긴 기성세대들은 의욕에 찬 젊은이들을 북돋아주기 보다는 오직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떤 젊은이들은 그게 틀렸다며 다른 길을 가고자 무리에서 이탈했지만 대부분은 또 그렇게 비슷한 길을 가게 되었다.
직장생활은 포기와 체념의 연속이다.
내 사생활은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고, 가족과 함께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할 시간조차 침범당하며, 가끔은 마음에 없지만 입에 발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일에 대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하며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충분히 체념하고 포기하지 못해서 회사에 다니는 게 너무 힘이 들었나 보다. 나는 업무시간 외의 내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내 일이든 내 일이 아니든 분노했으며, 마음에 없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철든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철없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