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여행의 재발견
일본인들의 민족성 중 두드러지는 게 있다면, 무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 쓰기 강의에 갔다가, 그들의 또 다른 특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작가에 대한 환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쯤 작가의 꿈을 꾸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로또 같은 ‘환상 그리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그렇게 보면 저는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가 봅니다. 빠듯한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서도 세계일주를 꿈꾸는 걸 보면.
20대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건지 몰랐고, 체력이 이렇게 ‘훅’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책도 나오는 걸까요? 이런 저런 이유로 조바심이 생기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더욱 떠나고 싶어집니다.
피곤해 죽겠는데, 여행을 자꾸 가는 이유는 뭘까요? 은둔의 목적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자신했었는데, 사회에 나오니 저는 그저 미생물이었습니다. 날고 기고 경험 많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제 경험은 돈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을 다녀온 동기들이 부러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2015년 5월 블라디보스톡 공항.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직장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20킬로는 족히 나가 보이는 배낭을 짊어지고, 적어도 5년 이상 신었을 법한 신발을 신고, 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뒤태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포스가 호기심을 간지럽혔습니다. 먼저 인사를 했고, 그걸 시작으로 이륙 전까지 2시간이나 대화를 했습니다.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그는 세계일주 배낭여행자였습니다.
남미에서 강도를 만나 주머니를 털렸던 사연, 아프리카에서 등 뒤에 누군가가 칼을 들이댔던 순간. 처절하고 절박한 이야기부터 소박하고 예쁜 이야기까지, 아낌없이 들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이 있다면, 20대에 이미 세계일주를 마쳤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고, 세계일주를 꿈꾸는 20대들이 많잖아요. 후배들에게 팁과 조언을 해주신다는 느낌으로, 사명감을 가지시고 책 한 권 쓰시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하며 우리는 서로의 길을 다시 갔습니다.
사람마다 주는 에너지와 느낌이 다른데, 제가 느낀 이분의 에너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의 고수’였습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 없는 자연스러움의 미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친 척하고 질러버린 첫 해외여행이 2014년 8월 간사이였습니다. 오사카와 그 일대를 돌아보며 ‘진작 와볼걸’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결코 비용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거나, 남들 모르는 오지의 발견은 아니었지만, 많은 걸 배웠습니다. 첫 번째가 ‘선입견 파괴’와 ‘사고의 전환’이었습니다.
어릴 땐 시간과 에너지는 있지만 돈이 없다.
어른일 땐 돈과 에너지가 있지만 시간이 없다.
노인이 되었을 땐 돈과 시간은 있지만 에너지가 없다.
모든 게 100%일 때는 절대 없었음에도, 언젠가는 100퍼센트가 채워질 것처럼, 그렇게 매번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떠나야 할 때는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한 일정을 짜고 첫 해외여행을 질러버린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미친 척 일을 할 때는 돈이 모이지만 시간이 없고, 시간이 넘칠 때에는 충분한 자금 여유가 없습니다.
신구 아저씨가 꽃보다 할배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을 때에는 가야 한다’는 말을 이제는 믿게 되었습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가도 후회하고, 가지 않아도 후회하는 결혼과 같다면, 일단 지르고 후회하자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파울로 코엘료
여행을 통해 내 세상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타산지석의 눈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첫 일본여행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전통문화 보존
배려가 포함된 개인주의
선진국에 대한 환상
관광객을 위해 수십 년 된 것들을 부수고, 일반인이 불을 지를 만큼 보안이 허술한 우리와 달리, 전통문화에 대한 보존이 아주 잘 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저조차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로 개인주의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도톤보리를 거닐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렸습니다. 길치답게 지도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떨어트렸나 봅니다. 비에 젖은 그 핸드폰을 스쳐가던 여고생이 주운 뒤 웃으며 건네 줍니다. 서울에서 이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별 것도 아닐 수 있지만 큰 감동이었습니다.
비에 절반은 침수된 핸드폰을 내 앞에 누군가 떨어뜨렸다면? 저는 그냥 지나갔을 것 같습니다.
우메다에서 교토로 가는 길, 또 한 번 일본의 개인주의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철을 이용해 교토의 아라시야마 대나무숲으로 가는 길에 할머니가 타셨습니다. 저는 일본 특유의 좁은 좌석 때문에 옆 자리에 짐을 두고 1.5칸 정도를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보고 짐을 무릎 위에 올렸고, 자리를 비워드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내리실 때까지 인사를 3번이나 하셨습니다.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개인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개인주의엔 배려가 깔려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진국에 대한 환상이 철저히 깨졌습니다.
도시적이고 화려한 경치만 상상하고 한국을 떠났었습니다. 막상 가보니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볼 거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어서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것이었죠.
화려한 곳이나 유명 관광지만 돌아다닌다면? 이런 숨겨진 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골목 구석의 5평 남짓한 선술집에 들어가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주말 가족들이 오는 작은 공원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와 사는 것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그렇게 선입견과 환상이 깨지고,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배울 점은 배워오는 것.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