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여행의 재발견
2015년 2월. 간사이에서 느꼈던 여백의 미를 잊지 못해, 두 번째 일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적지는 나가사키와 후쿠오카. 나가사키에서 비를 쫄딱 맞고 감기에 걸려버렸습니다. 때문에 마지막 일정이었던 후쿠오카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적당히 쉬고 가도 될 텐데, 왜 굳이 떠나는 이유를 만드는 걸까요? 어떤 스님의 말마따나 노출과 은둔의 균형을 위해서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겁니다.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감성과 의식 때문입니다. 폭풍전야처럼 느리게 서행하다 굉음으로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폭발,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사람들과의 바디랭귀지,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길고양이의 부끄러운 짖음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그 여행이 주는 ‘맛’ 중에서 0순위가 있다면? 바로 기획입니다.
뭔가 얻으려 떠나는 여행은 막상 떠나고 보면 실망스럽거나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첫 장거리 여행이었던 간사이 여행은, 남자 둘에게도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그 힘든 와중에도 '한류 프리미엄, '난파' 같은 단어 때문에 생긴 근거 없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외국인을 조금 경계하는 듯한 몇몇 남자의 눈빛을 받고 왔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나요? 환상이 처참히 깨지고, 선입견의 벽도 깍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여행의 진짜 맛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작정 해외여행을 떠나기보다 내 감성에 맞는 여행지를 찾아보고, 나름의 콘셉트를 잡습니다. 세계 3대 야경 투어, 러브레터 촬영지 투어, 무간도 배경지 투어 같은 테마여행입니다.
사전답사까지 못하지만, 떠나려는 곳의 문화와 정서를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러다 보니 두세 달 전부터 준비하는 습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냐구요?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그 기간 동안 얻게 되는 여러 좋은 점들 때문입니다. ‘미리 크리스마스’같은 설렘을 얇고 길게 느낄 수 있고, 주워담은 것들로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도 해줄 수 있으며, 스스로도 재미있는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얼리버드 항공권, 호텔예약 프로모션 같은 경비절감은 보너스입니다.
사랑도 투자할수록 추억이 오래가듯, 여행도 시간과 신경을 쓸 수록 ‘감성과 추억의 사이즈’가 커집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마르쉘 프루스트
너무 아름다웠던 제주도에도 실망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누구 말처럼 ‘중국 땅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들 때문입니다.
여행 막바지에 서귀다원이라는 곳을 들르게 되었는데, 운 좋게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여행사와 관광지가 합심해서 중국인들을 인솔할 때에 주로 입장료를 내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입장료 내는 곳을 피해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상업성으로 찌든 여행지를 피해 순수한 목적지를 찾는 것도 여행의 실력이라면 실력입니다. 아직 멀었지만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주도의 논짓물 해안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제주도 도민들도 자주 찾지 않는다는 이곳의 햇살을 맞으며 걷는 기분은 최고였습니다. 조식 먹는 호텔 식당에서 큰 소리로 코를 풀던 중국인들을 피해 숨쉴 수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예전의 여행은 “남들 다 가는데 나만 안 가봤잖아” 하는 생각으로 떠났었습니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 관광에 가까웠습니다. 덕분에 관광지보다 사람 구경을 더 하고 돌아왔습니다.
관광에 사람 구경이 있었다면, 지금 제 여행에는 사색과 소통이 있습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동안 미련을 더 많이 먹고 살았습니다. 후회와 미련을 많이 먹고 살다 보니, 내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 생각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다 보니 여행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여행이 준 특별함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중입니다.
말 통하지 않는 외국 땅에 쳐들어가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묻는 이유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다만 예전엔 절대로 하지 못했던 짓(?)이란 것은 확실합니다. 외국어를 못해 숨었다면, 지금은 통하든 말든 손짓 발짓으로, 그것도 안 되면 눈치로 대화합니다. 아웅다웅하다 보면 뜻이 통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지나고 되돌아보면 ‘사람이 귀하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습니다.
한국으로 되돌아오면 또 다시 스마트폰이 귀한 일상으로 복귀하겠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 하나뿐인 나만의 특집 하나는 만들어졌으니.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