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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inar Flow Jul 07. 2022

중견기업 사내정치의 불편한 진실


(은어, 비속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에 쓰인 '아래 것들'이라는 표현 등은 글의 분위기를 위해 가감 없이 넣었습니다.)


직장생활 졸업한 지 곧 5년, 그 치사하고 더러운 사내정치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 몰랐다. 그때 기억은 떠올리기 싫은 노이로제였다. 그러다 가끔 회사들과 부대끼며 일하다 보면 그때 기분이 돌아오기도 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운 좋게 중견기업 계열사에 입사하게 된다. 2년을 치열하게 보냈고, 본사 발령을 받아 투입된다. 얼떨떨했지만 가야 된다고 느낀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알박기, 경쟁의식, 질투, 야지주기, 엿먹이기. 사내정치의 정글을 보게 됐다. 이 중 최민식 배우님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을 준 게 바로 사내정치다. 


알박기 : 소위 '짬'대우를 받기를 원하며 기선제압을 하려는 행동(?)



지는 사내 정치인 줄 모른다

또 열심히 일해 2년 뒤 회사 역사상 최연소 본부장이 된다. 회사에서는 4번째 높은 자리다. (지금은 우리 집에서 4번째 높은 자리에 있다.) 어쨌든 이건 내 이야기고, 반대로 그들의 생각은 뭐였을까?


'본사 대표의 가족인 계열사 대표의 비호 아래, 듣보 팀장이라는 놈이 낙하산을 타고 본사로 쳐들어왔다.'


이런 느낌이었을지도. 내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회사는 그만두지 않을 정도로 돈을 주고, 직원은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일한다지만, 할 건 해놓고 자야 하지 않나? 일은 일이다. 

문제는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 보통 회사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설렁설렁 일하는 80% 속으로 20%가 뛰어다니는 것이 내가 본 대한민국 회사들의 전형이다. 이러니 본사의 특수성(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까?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혼자 주야장천 뛰어다니고 전국 순회를 하며 지점을 케어해도 결국 내가 돌아와야 할 곳은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상'같은 박쥐들의 공동묘지다.


나와 같은 팀이었던 나이 많은 부장은 '3을 달라고 하면 1을 주면서 생색'을 냈고, IT부서는 홈페이지에 코드 하나 넣어달라고 하면 1-2주를 보냈고,  회계팀은 우리가 계열사 분리를 하자마자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세금계산서를 직접 발부하라고 했다. 드디어 나는 폭발했다.



사표를 냈고, 최대한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회사는 당연히 말렸지만, 내가 가진 능력 중 가장 게이지가 높은 게 고집이었다. 포기하지 않던 회사는 나와 같은 나이의 동료 직원에게 회유해보라고 요청했는지, 나에게 야지를 주던 인간이 난데없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왜 퇴사하려고 하냐길래 어차피 그만둘 거 포인트를 알렸다.


"회사에서 일처리도 잘 안되고, 다른 건 꾸역꾸역 하겠는데 사내정치 때문에 못하겠네요."


"우리 회사에 사내정치가 어디 있어요? 가장 높은 직급이 회장이고 회장은 한 명뿐인데."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고 느꼈다. 사장 라인, 부사장 라인, 본부장 라인, 없는 게 없는데 라인이 없다니 어이가 없었다. 등짝에 런닝맨처럼 써붙이고 다녀야 진실이 되는 건가?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회사에 사내정치가 없다고 말이다. 그 회사에서 사내정치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그 후에도 나는 할 말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병x아 네가 그 회장한테 실력이 아니라 정치질 해서 올라가려고 하잖아 지금'



의외로 아래 것들이 사내정치에 더 치열하다

부장쯤 되면 슬슬 아래 것들의 줄타기가 보인다. 바로 얼마 전까지 아래 것들이었는데 자리가 바뀌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놀랐던 건 직급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평등해 보이려 애쓴다는 것이다. 반대로 슬슬 적응이 끝나가는 직원들이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내가 알던 사내정치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다니고, 잘해주고, 밀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반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대한민국 회사에서 실력으로 올라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일까?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더 똑똑한 게 아닐까? 지금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이런 일들을 겪을수록 회사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는 뒤집어진 세상이 여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구린 바이브를 풍기며 사내정치를 하겠지만, 관 뚜껑에 못 박힐 때 그걸로 얻은 이득이 +1로 표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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