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약인 줄 모르고 마셨던 신사업 대표직, 그땐 그게 쥐약인 줄 몰랐다. 어쩌면 알았지만 엑셀 한 번 밟아보고 싶었던 걸지도. '그래 까짓 거 칼춤 한번 춰준다'는 심정으로 경기도 일대를 영업 다니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에 다시 맨땅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공보다 빨랐던 차두리가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이랬건 저랬건 새 그릇에는 새 물이 필요하다 싶어 직원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9시 방향의 한 동네에서 미팅을 갖게 되는데,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만남이었다.
나보다 5-6살 어린 순수해 보이는 청년. 말투나 행동에서 1도 악의가 없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맑은 사람이었다. 이때만 해도 '영업직 사람 말은 반만 새기자'는 게 모토였다. 그리고 마케팅 분야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서 상대 말의 깊이를 가늠하려고 더 애쓰던 시기. 근데 난 이미 10분도 안되어 결정했다.
'어, 이 친구 직원으로 데려오자'
얼마 후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이 친구도 스스럼없이 배에 올라타겠다고 한다. 나의 뭘 믿었는지는 다음에 술 한잔하면서 물어봐야겠다. 문제는 그 당시 나의 회사가 굉장히 보수적 집단이었다는 점. 메인이 되는 교육사업이 아닌 타 업종에 무리한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마치 가두리 양식 성향의 인큐베이터랄까.
결과적으로, 순차적으로 우리는 둘 다 그 회사를 나왔다. 조금 더 잘 밀어줬더라면 우리는 충분히 성공했을 것이고, 어쨌든 그래도 그만뒀을 거다.
이제 동생은 자기 사업을 하고 있고, 나는 프리랜서가 됐다. 그는 잘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나를 믿고 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한 번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사실 그게 더 미안했다.)
70 노인의 입맛, 그게 내 대인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짧은 취향임에도 이 동생과는 잘 지내고 있다. 조금은 다른 가치관, 완전 반대의 정치관, 여러 다른 점이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도 한국 현대사를 두고 접전을 펼쳤지만, 여전히 밉지 않다.) 오히려 회사 안에서 죽고 못 살 것 같던 사람들은 지나가다 카카오톡 프로필로만 인사할 뿐이다.
그와 내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확실한 게 있다면 사람은, 특히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란 것. 이 친구가 힘들 때 내가 그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도 내가 힘들 때 잡아주려고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친구도 사랑도 일도, 타이밍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 인연의 깊이와 길이가 거기에서 결정 나는 일이 많으니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는 나도 그도 모를 일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선 어떤 것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조금은 확신이 있다. 서로의 가치관 중 가장 상단에 있는 점이 닮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질을 찾으려 애쓴다는 점.
서로의 상황이나 입장 때문에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본질이 뭔지 생각하는 습관을 가까이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닮았기 때문에 큰 미동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