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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프 Dec 08. 2022

죽도 대신 볼펜을 쥔 여자

약으로 병을 다스리듯이, 독서로 마음을 다스린다.

 

“엄마, 표정이 왜 그래요?”

“왜? 내 표정이 어떤데?”

열 살 아들이 눈치를 본다. 엄마 얼굴을 살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마음 아파서.”

엉뚱한 대답에 당황해하는 아들을 쳐다보기가 미안했지만 내 알바가 아니었다. 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난 너무 속상하니까. 하고 싶은 말 뱉어버리고, 애 재우는 게 최우선이었다.


“또 속상해요? 엄마, 그러면 뇌수술받으면 되잖아요.”

“뇌수술?”

“수술해서 아픈 부분을 빼내세요.”

어이구. 마음을 어떻게 도려내니. 어이없다. 어쨌든 처방까지 해주니 고맙다, 그래. 아픈 부분을 도려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속 쓰림은 몇 해 동안 나에게 질기게 붙어 있었고, 나를 갉아먹었다.

 

“눈에 안 보이는데 수술로 없어지겠나. 쓰레기통에 확 버리고 싶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됐다. 너 잠잘 시간이다. 일기 다 썼어? 일기장 갖고 와봐.”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삼키며 아이에게 잠을 재촉했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는 데엔 일기장 검사가 제일이다. 몹쓸 상황을 급하게 종결해야 뒤끝이 없다. 아들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엄마 눈물이 아이 눈물을 낳았다. 눈물을 참지 못하는 아들이 미웠다.




육아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었던 삶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준비 없이, 생각 없이 덜컥 창업을 했고, 영업이익을 살필 시간도 없이 소송을 하게 되었다. 씹다가 버린 껌을 밟은 건지. 더러운 똥을 밟은 건지. 


억울함. 엄청난 위력의 감정이었다. 하루 중 만나는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짓밟고 일상을 점령한 너란 감정.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아이에게 소리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화를 품고 살았던 지난 시간. 분노 필터를 장착하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분노는 우리 가족의 하루하루를 지켜내고 있었다. 고함은 굿나잇 인사가 됐다. '잘 자'대신 '어서 자'가 우리 집 굿나잇이었다. 꿈속에서라도 따뜻한 엄마를 만났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방문을 차갑게 닫고 나왔다.

 

검도를 다닐까 고민했다. 마음껏 소리칠 수 있으니. 힘껏 휘두를 수 있으니. 나의 분노를 검도 칼에 싣고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남편한테 ‘나 검도 다닐 거야’라고 말해볼까? 수십 번 되뇌다가 용기 내어 선언했다.


"나, 검도 배울 거니까, 말리지 마."


"차라리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사연 신청해보는 건 어때?"


 아무리 그래도 나 그 정도는 아니잖아 위로해보았다. 아이 프라이버시도 지켜줘야지. 우리 금쪽이. 엄마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셀프 모드로 반성하고 정상적 궤도로 복귀할게.

 


약으로 병을 다스리듯이, 독서로 마음을 다스린다.

- 카이사르 -





취미는 독서예요.”

참, 그랬지. 난 읽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지. 고소장을 훑어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쳐갔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 멋져 보였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 서점의 향기는 신경안정제다. 괜스레 사근사근해진다. 책 속의 수많은 진리가 자연스레 내 몸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책 제목만 훑어도 오늘은 한 뼘 성장한 거 같다.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결코 읽지는 않았지만 완독한 뿌듯함. 책 향기는 아름답고, 책 구경은 언제나 설렌다. 책은 놓치기 싫은 나의 갈망이었다.


 쭈쭈바, 종이인형 옷 갈아입히기, 공기놀이가 내 어릴 적 취향이었다. 하지만, 방 한편엔 책으로 빽빽한 키 큰 책장이 항상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다 가끔 한 권 집어 들곤 했다. 딸 이름에 ‘쥐’ 돌림자를 쓴 콩쥐팥쥐 부모를 만나지 않은 나는 행운아였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만약 깨진다면, 왕자님은 신데렐라 찾기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궁금했다. 초등학생의 ‘자기 주도적 독서’는 멈췄다. 딱 거기서.

 

부끄럽게도 사춘기 독서는 더 허접했다. 줄거리 요약을 헐레벌떡 읽고 난 뒤, 머리를 움켜쥐며 독후감을 극복해내야 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배부르기는 커녕.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첫 장 몇 줄만 후루룩 눈을 흘기다가, 뒤끝 없이 야무지게 덮었다. 제목도, 책 표지도, 줄거리도, 읽고 있는 와중에그들은 아늑히 멀어졌다. 선생님의 ‘독서 찬양’은 귀에 못이 박힐 듯 말 듯 귓가에 맴돌더니, 이내 아침 조회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허공 속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땐 소중했다. '읽지 않는 자유’가.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만만찮은 노동이었다. 힘들었다. 힘겹게 눈을 좌우로 움직여서 일부러 피로감을 붙잡기 싫었다. ‘학교 안’ 교과서는 그나마 놓치질 않아서 애매한 상위권 학생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학교 밖’ 책은 사춘기 소녀의 뇌에 모질었다. 티브이 예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산만한 웃음을 포기하고, 찌끈찌끈한 책 속에서 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읽으려고 애쓰다가 허멀겋게 퍼지고 싶지 않았다. 대여섯 장 별스럽게 읽다가, 몇 분 안에 뒤끝 없이 덮었다.


나의 독서는 항상 그랬다. 시작은 하는데 어느덧 꼬리는 사라졌다.



이번엔 읽기로 했다. 내 취미는 독서. 갈망해왔던 내 모습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소송으로 매일 찢기는 고통이 내게 건네주는 한마디는 '읽어라'였다.


절실함은 읽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검도 배우려던 용기는 다행히 책으로 나를 이끌었다. 죽도 대신 볼펜을 쥐었다. 볼펜으로 밑줄 긋고, 책문장을 메모한 포스트잇을 노트에 붙이면서, 읽고 또 읽었다. 아니 이럴 수가.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수치심에 유연해야 한다."


 책이 알려 주었다.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서 오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피난처를 만드는 것과 같다.

- 서머셋 몸 -



 독서는 잃어버렸던 일상을 찾아주었다.

오전 요가 수련 덕분에 은근한 엉덩이 통증은 한껏 사랑스럽다. 아침에 보충해준 물로 몬스테라는 더 싱싱해졌다. 멜론 뮤직의 실시간 차트는 아이돌 노래로 가득 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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