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리행

by 램프지니

결혼 20주년을 기념하며 발리로 여행을 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선교를 다녀오느라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다시 짐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들 없이 남편과 나,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이라 낯설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다.


벌써 20년이라니. 함께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서른이 넘어 결혼하고, 시댁과 직장, 그리고 첫아이까지 정신없이 맞이했던 신혼 초를 시작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쉼 없이 살아왔기에, 리조트 안에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이틀이 지나자 남편은 슬슬 발동을 걸었다. 여기저기 리조트 안을 탐험하듯 누비며 나에게 동행을 요구한다.

“어? 이건 여행 오기전과 말이 다르잖아! 가만히 있어도 된다며! “ 라며 장난스럽게 투덜거리지만, 나도 이틀을 쉬었더니 결국 좀이 쑤셔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보니, 오래전 신혼의 우리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비치체어에 누워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이 평화롭고 소중하다. 바람에 실린 파도 소리와 석양빛이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우리’의 온도가 이토록 따뜻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결혼 20년의 시간은 서로를 바꾸어 놓았다. 젊음의 불꽃 대신,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온기로 남았다. 싸우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걸어왔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발리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앞으로의 시간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이 평화와 따뜻함을 기억하기로. 인생의 다음 20년도, 여전히 함께 웃으며 손을 잡고 걸어가리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