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 나는 정다운 이들을 초대하기 위해 시드니의 한국 식품점으로 향했다. 도로 위는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차들로 가득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불빛들을 보며 문득 우리네 삶도 저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사고 없는 길에 감사하며, 정성스레 고른 식재료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마주하며 환하게 웃을 지인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단함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변했다.
이번 초대 손님은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가족이다. 이제는 넷이 아닌 셋이 되어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섰지만, 그들을 맞는 마음은 여전히 애틋하다. 어느새 대학을 졸업한 첫째와 고등학교를 마친 둘째를 보니, 아이들의 키만큼이나 훌쩍 가버린 세월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진다. 이제는 아이들이 아닌 성인이 되어,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한 잔씩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저녁. 그 깊어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문득, 이제는 영원히 이 식탁에 함께할 수 없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자기야, 아이들이 정말 잘 컸어.’
비어 있는 그 사람의 자리 위로 아련한 그리움이 내려앉는다.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안부를 건네며, 그곳에서는 부디 평화롭기를 기도해 본다. 연말이라는 계절의 무게 때문일까, 오늘따라 감정의 물결이 유난히 깊다. 남반구의 뜨거운 여름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온기를 본능적으로 찾아 헤맨다. 거꾸로 흐르는 계절 속에서도 그리움만큼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올 한 해의 기억들을 식탁 위에 차려진 와인 잔에 담아본다. 치열하게 일하고, 붓을 들고, 글을 쓰며,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그 모든 시간들.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던 한 해를 이제는 다정한 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평온하게 내려놓으려 한다. 뜨거운 호주의 밤하늘 아래, 남십자성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밤. 나는 비워진 잔을 채우며 다가올 새해에는 그리움조차도 나를 살게 하는 부드러운 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