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프리랜서

일상적 상상

by 뭉군

오늘도 여행가방을 쌌다. 이렇게 내키는대로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서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자유롭게 시간조절을 해가며 쉴 수 있지 않느냐는 흰소리가 그 바탕이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오후 두시의 지하철 객실에 늘어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냐고 묻는다.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되는 이들의 얼굴에서 프리랜서의 자유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일없는 사람들, 수업가는 대학생들, 외근나가는 직장인들의 눈빛은 출퇴근시간대 서로의 몸뚱이에 눌려 지친 직장인들의 그것보다 더 흐리고 초점을 잃은 모습이다. 왜일까. 쏟아지는 졸음 탓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가며 분위기를 살폈다. 역시나 끈적하게 늘어진 분위기다. 그 와중에 작달만한 한 남자가 구걸도 아니고 위압적인 눈빛을 내걸고 다니면서 칸칸의 부녀자들에게 적선을 요구한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그의 목소리가 커진다.

아니 씨바 여긴 그지 깽깽이 밖에 안탔어

들썩거리던 그가 사라진다. 사람들은 희미하게 웃는다. 똥은 그저 더러울 뿐이니까.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나는 이 칸에서 제일 활기만발한 남자다. 그러나 내가 일구는 사연들마저 그저 유쾌하게 들려서는 안된다. 시중에 나가면 이만오천원에 살 수 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천원짜리 두장만 받고 파는 이유는 뭔가 그럴듯 하면서도 심금을 울려야 한다. 백화점에 납품을 하던 중소기업이 부도가 났다거나 판로가 막혔다는 식의 예상치 못한 외부적 파고를 언급해야은 물론이다. 요즘은 애프터서비스도 기본이다. 되든 안되든 제품 껍데기에 공칠공 번호 하나는 남겨둬야 한다.


이미 난봉꾼이 한차례 휘젓고 난 객실은 여전히 서늘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톤을 좀 높인채 한두바퀴를 돌았다. 드디어 누군가 나를 찾는다.


"안내말씀 드립니다. 지하철 안에서는 물건을 팔 수 없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지하철 안에서는 허가없이 물건을 팔 수 없습니다. 파시는 분께서는 지금 바로 하차해 주십시오."


나는 이 칸에서 가장 주목받는 남자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짐짓 모른 척 딴청이다. 그러나 아이폰으로 신문을 읽던 청년의 눈동자는 더이상 굴러가지 않았고 수다를 떨던 아줌마의 입은 계속 움직이면서도 곁눈질만은 나를 향하고 있다.


다시 여행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다보니 문득 신세 한탄이다.

안한다 안한다... 또 어떤 할 일없는 놈들이 전화했는 모양이구나...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전화를 하고 그래


사람들은 나를 잡상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