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월급 외에 돈을 벌어들이는 OO가지 방법,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으로 월 3백만 원 만들기 등의 수많은 영상들을 보았다.
유행하는 파이프라인은 크게 8가지였다.
1. PDF책 써서 팔기
2. 네이버 블로그를 개설해 방문객이 일정 수 이상이 되면 체험단과 페이지 광고를 통한 수입을 얻기
3.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 구글 애드센스라는 광고 송출 서비스에 가입한 뒤 내 블로그에 애드센스 광고를 붙여 클릭이 일어나면 그만큼 광고수입을 얻기
4. 유튜브를 개설하여 구독자를 늘리고 조회수를 많이 확보하여 광고 붙이기
5. 크몽, 숨고, 탈잉 등의 사이트에서 프로젝트를 팔기
6.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온라인 강의로 만들기 혹은 오프라인으로 강의하기
7.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마케팅만으로 수익을 올리기(배송 대행 이용)
8. Print on demand(POD)라는 방법으로 디자인 상품을 팔기
위의 8가지 일들의 공통점은 집에서, PC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또한, 판매하는 것이 유형의 상품이 아니라 무형의 상품= 지식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스마트 스토어는 약간 다르기는 한데, 실제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내용을 보면 좋은 상품을 발굴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세페이지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어느 정도 승패가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단순히 상품 유통의 기술과는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부업이 있었는데 손뜨개로 아이팟 케이스를 팔아서 월수입 천만 원을 올린다는 사람도 있었고, rumble이라는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려 돈을 받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Italkie라는 플랫폼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알바를 한다고 소개했다. 전문 튜터도 있지만, 자기 같은 일반인들도 커뮤니티 튜터로 약간 저렴한 비용으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전 시대의 직업들이 그 형태만 살짝 바꾸어서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알바들과 새롭게 생겨난 알바들이 마구 혼재된 양상이었다. 그중에서 그래도 나에게 익숙한 일은 바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건 내 전문이 아닌가?
물론 나는 언어장애 아동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라 구체적인 기술은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언어를 가르친다는 본질은 비슷해 보였다.
Italkie에 튜터로 등록을 하려면 자기소개 영상도 찍어야 하고, 수업자료도 이미 준비되어야 있어야 했다. 플랫폼에 들어가서 이미 튜터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자기소개 영상을 보니 다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첫 번째 좌절을 했다.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일단 나 자신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약간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한국에 들어와 영어회화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을 보면 한국말을 거의 못하고, 오히려 못할수록 오리지널 원어민이라는 느낌으로 더욱 인기가 있는데, 한국말을 가르치면서도 우리는 영어 울렁증에 좌절해야 하다니.
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었다.
Study Korean every day라는 이름으로 오픈 챗을 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오픈 채팅방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지도 얼마 안 됐는데, 챗방을 만들어 놓으니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잠깐, 그럼 이 사람들은 다 카카오톡을 쓴다는 얘긴가?
애초에 카카오톡은 한국에서만 쓴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Study Korean이란 제목으로 오픈 챗을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얼마나 무모하고 아무런 감각이 없는가를 증명해준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열었던 카톡방에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들어온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대화한다.
방장인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신난다고 소개하고, 물어보고 난리다.
대부분은 한글조차 모르는 수준이고, 일부는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 있거나, 한글 정도는 독학해서 알고 있거나 한다. 도대체 왜 이 오픈 챗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한 건 이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마도 상당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자기네 나라에서 잘 쓰지도 않는 카톡을 사용하는 이유는 한국 친구를 사귀거나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한참 자기네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또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와 같은 아시아는 물론 많았고, 터키, 러시아, 이집트, 핀란드 등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픈 챗방이 활성화되어있고 대화가 활발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는데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BTS나 블랙핑크의 팬들이었고 나이는 16-21세였다. 20이 넘으면 이 방에서는 나이가 엄청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나는 43이야라고 말하는 게 왠지 창피해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오픈 챗방을 연 목적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어려운 부분이 어떤 것이지에 대해서 알고, 가르치는 경험도 해보고 자료도 만드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서였으므로 한국어에 대해서 톡을 올려보았다.
한글을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면 좋은지 관련된 유튜브 영상도 추천해보고, 짧은 자료를 만들어
“Today’s expression”이라면서 단어나 문장들을 설명해서 올려보기도 했다.
문제는 100명 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한국어로 채팅을 할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어서 5~6명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한 명이 개인 톡을 보내왔다.
A와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카톡으로 가벼운 대화를 하며 틀린 부분을 고쳐나갔다.
A는 미얀마에 사는 젊은 아가씨였는데 미얀마에 있는 가방을 만드는 한국 회사에 다니고 회사에서는 영어를 쓰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팀장급으로 미얀마 직원들과 한국 직원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재원이었다.
A는 TOPIK 2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능력시험인 TOPIK 2를 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미얀마에 한국기업들도 많이 진출해있고, 미얀마에서 한류의 영향력이 대단해서 한국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말을 잘하면 기회가 많을 것 같았다.
A는 매일 아침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보냈고, 나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짧은 글짓기와 같은 숙제를 내주며 한국말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미얀마 쿠데타 사태가 터졌다.
이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차 한국어 수업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나는 A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A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동생과 둘만 살고 있었는데, 쿠데타 사태로 공무원인 동생은 집에 혼자 있고, 직장에 다니는 A는 집이 있는 양곤과 직장이 있는 바고를 차로 운전하며 매일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군인들이 시위대고, 일반인이고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고 총을 쏴대고 있어서 사실상 출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A는 출근을 했다.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미얀마 직원들이 다들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못 나가게 하고 있어서 80% 이상이 출근을 못하고 있어 한국 법인장이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자신까지 나가지 않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직원들을 출근하게 하는 한국인 법인장 욕을 한바탕 해주고, A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어리고 순진한 A는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양팔을 벌려 안아주고 잘려도 좋으니 회사 가지 마라라고 말해주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 A에게도 사무쳤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4차 혁명이니, 지식기반 창업이니 새로운 세상이 온 것 같았지만, 지구 한 편에서는 출근하다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일상인 세상이 같은 시간 하에 흐르고 있었다.
A와 매일 카톡을 주고받으며, 나는 얼굴도 모르는 A에게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갖게 되었고, A 역시 나에게 의지하는 게 느껴졌다. A는 쿠데타 상황 하에서도 한결같이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매일같이 나에게 안부인사를 했다. 알지도 못하던 미얀마라는 나라가 얼른 평화를 되찾기를 나는 매일 기도했다.
하루는 A가 이제부터 미얀마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면서 일주일 동안 휴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집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며 나에게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한국어 교재를 몇 개 보내주었다. TOPIK 주관 홈페이지에서 기출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A는 늘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의 사소한 친절에 A는 뛸 듯이 기뻐하고, 작은 도움에도 깊이 고마워한다.
그런 A를 보며 나는 "잘 받는 것이 주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A는 나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내가 오히려 A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단지 채팅만으로도 이렇게 깊어질 수 있다.
우리가 4차 혁명을 통해서 얻어야 할 것이 무한한 돈벌이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