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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호수 Jan 14. 2021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다시 전능감을 잃었다(1).

이제부터 니 맘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을 걸!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능감은 신생아가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의 생리적인 욕구들이 제 때에 잘 충족될 때 생기는 감정이다. 세상에 대한 신뢰라고도 하고,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내가 제일 잘났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다.


이 전능감은 아이가 자라면서 동생이 생기거나, 어린이집에 가거나, 엄마와 나 일대일의 관계에서 벗어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깨지기 시작한다. 어? 내가 울면 뜻대로 다 이루어져야하는데 그렇게 안되네? 더 크게 울어볼까? 소리지르면 될까?


 때가 바로 미운 4살이다. 얼마나 억울하겠나. 응애응애 울기만해도 배고픈 것 불편한 것이 척척 해결되던 삶에서 모든 것이 내맘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사회화다. 즉, 타인의 욕구도 돌아봐야 한다는 것, 때로 나의 욕구를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냥 울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 많은 것들을 깨달으면서 사회안에서 수용될수 있도록 나의 욕구를 조절하고, 미리미리 계획해서 내 욕구를 실현하고, 이같은 연습을 잘 해내면 이른바 사회화된 전능감(이건 심리학에서 나온 말은 아니고 내가 만들어내 말이다)이라 할 수 있는 자아효능감(이건 심리학 용어고!)을 발달시키게된다. "나 스스로를 통제할수 있고, 욕구를 실현하기위해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겨 결국 달성할것이라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상태"라고 하겠다.




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이 자아효능감이 아주 높은 시절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다.

지금은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게 별로 없더라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지만, 그 시절에는 "노력하면 100%는 안돼도 80%는 이룰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내 힘으로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남편과 힘을 모아 신혼생활을 으쌰으쌰 해나가던 시절. 아기를 갖는 것조차 계획적으로 잘 해야지 하면서 배란일을 계산해가면서 원하는 해, 원하는 달에 낳고자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러나 나는 원래 생리불순이 심했고, 2~3개월은 기본적으로 거르기 일쑤였으므로  죽었다 깨어나도 배란일로는 계획 임신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래 2~3개월 실패한다고 생각하고 지금 시작하면 내년 3월에 낳게되겠지? '라는 깜찍한 생각을 했으나..... 아뿔사! 첫시도에 임신이 되어버렸다. 난임부부들을 생각하면 정말 축복하고 감사할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12월31일이라는 출산예정일을 받아들고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 날짜를 보고도 나는 '그래, 첫아이는 보통 늦게 나온다고 하니까 해 넘어가서 나오겠지'하고 기대를 했었다. 심지어 12월31일에 느낌이와도 꾹 참고 해를 넘겨야지라고 까지 생각했던 것같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임신의 과정은, 여자의 일생에서 어쩌면 가장 대접받고(여자이기때문이 아니라 뱃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기때문에), 동시에 가장 억압받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의미에서) 시기라는 데에 반대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래, 이게 바로 시작이었다.


아기를 갖는 것, 배속에서 아기를 키워내는 것에 시도와 노력은 있을지언정 계획과 통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저 일어나는 현상을 그대로 감사하게 받아들여야했다.




 37주차 정기검사에서 양수과소증 진단과 함께 "내일 당장 수술해서 꺼내자"라는 말을 들었다. '고생하지말고 그냥 수술하라'경험자의 충고를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아마도 아직까지 '나는 할수있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때문이었으리라.  그 결과 유도제 6팩 주입, 실패, 하룻밤 자고 다시 시도, 다시 실패, 결국 응급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꺼내야했다.이 이야기 뼈대에 살을 붙이면 글 열편도 더 쓰겠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아이를 갖고 출산하는 과정에서조차 그 당시 나는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 자꾸 헛된 시도를 하고 그것이 실패할 때마다 크게 절망하고 내가 제대로된 선택을 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라고 후회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나에게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니가 별 짓을 다 해도 니가 원하는 때에 임신이 안될거야. 그냥 안 생기면 그대로 신혼생활을 즐기고, 생기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뻐해. 아 그리고 혹시 애가 장애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악몽 꾸고 잠 설치지말고 미리미리 잠이나 실컷 자 둬. 그래도 태아보험은 일단 적당한 걸로 하나 드는게 좋고. 그냥 보험금으로 액땜한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적어도 5세까지는 유지하고. 선천적인 장애의 경우 태아보험이 치료비를 보장해주고, 발달장애는 태어나자마자 아는 게 아니라 만3세는 지나야 알게되는 경우가 많거든. 12월에 태어나도, 3월에 태어나도 아이는 결국 100세 이상 살건데 그 몇 달 차이 진짜 별거 아니니까 너무 안달복달하지도 말고. 제왕절개나 자연분만이나 결국 다 똑같아. 그 순간 필요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하면 돼"


라고 아주아주 가볍게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내 주변에는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었다.


"자연분만이 아이에게 좋다는데..."


"얘, 무통하면 못 낳고 결국 수술한다더라, 무통하지마라."


"연말에 애를 낳게 됐네. 나이 한살 헛먹어서 아깝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내가 어찌했어야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거라는 식의 말들이 애정어린 충고라는, 위로와 관심이라는 탈을 쓰고 내게로 와서 꽂혔다.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이가 좋지 않은 시작을 하게되었구나 하는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이는 분만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었기 때문에 태변을 먹고 탯줄에 목이 감겨 졸리기도 하면서 결국 응급수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신생아실에서 처음 본 아이의 머리는 땅콩모양이었다. 간호사는 산도에 끼여있는 동안 눌려서 생긴 거라면서 며칠 지나면 동글동글하게 돌아올테니 걱정말라고 위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내 몸이 부족해서(왜 내 산도는 남들처럼 넓어서 저 머리가 쑥 나오지 못한 거냐고!), 아니면 내 선택이 잘못돼서(그냥 처음부터 제왕절개할걸!) 생겨난, 평생 없어지지 않을 상처같았다. 아이의 머리는 그저 잠깐 눌렸을 뿐이고 그 자국은 간호사 말대로 그냥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어질 가벼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편안하게 출산하지 못했다는 내 몸에 대한 원망과 내 선택에 대한 후회를 반복했다. 그것은 죄책감이라는 상처로 나에게 지워지지않을 흔적을 남겼다. 그 상처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마음 한 켠에 자리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이가 잠을 잘 못자거나, 한번 울음이 터지면 몇 시간이고 울어댈 때, 남들 다 하는 낯가림이라지만 남들보다 그 정도가 과하다 싶을 만큼 심할 때, 내가 책에서 읽어본 그 나이 때의 어린 아기들의 행동과 내 아이의 행동이 다를 때마다 그 생각이 났다.


"양수과소증 때문에 40주를 못 채우고 나와서 아이가 발달을 못했나?"
"머리가 눌리고 숨을 못 쉬는 사이에 미세한 뇌손상이 있었던 건 아닌가?"
"장애아이들 히스토리를 들어보면 출산 시에 태변 먹었다는 얘기가 많던데 우리 애도 태변을 먹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걸까?"


그때 당시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들로 인해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 원인이 되었을 것만 같고, 그 모든 일들을 사전에 내가 막지못했고 내가 할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무력감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성인이 되어서, 상당히 높은 자아효능감을 가졌던 나로서는 이러한 무력감이 견디기가 어려웠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군가 책임을 지고 비난을 받을 사람이 필요했다.


양수과소증 진단을 내린 의사 - 제대로 진단한거 맞니? 초음파 결과 제대로 못 본거 아니야?


자연분만을 계속 시킨 의사 - 자연분만 친화병원이라는 타이틀때문에 맞지않 은 케이스임에도 억지로 시킨거지?


결국, 나 자신 - 의사가 의심되면 병원을 옮기던가 제대로 알아봐서 제왕절개를 더 강력하게 주장했어야지!


유도분만과 수술의 고통을 동시에 경험한 나로서는 임산부로서는 회복이 가장 느린 경우였고 그야말로 마음편히 먹고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해야했지만, 내 아이가 불쌍했고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비록 자연분만은 못했지만, 모유수유만큼은 제대로 하리라"

라고 단단히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아, 망할 자아효능감이여!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전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 아이의 모든 행동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정상이라는 기준, 평균, 보통이라는 말들로 평가하고 조금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 그 이유를 찾고 거기다가 그 이유가 다름 아닌 내 선택때문이었다니! 만약 내가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쑥 낳고, 40주도 꽉꽉 채우고 했다면 아이가 잘먹고 잘 자고 사교적이었을까? 그런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한 트럭은 될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이 아이가 잘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내가 제대로 하면 이 아이는 잘 자랄 것이다라는 결론을 부른다. 그런데 만약 그러지 못하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대부분 이 기준 자의적인데다가 꽤 높기까지하다.) 미치지 못하면 나는 그 원인을 찾고, 비난대상을 찾게 된다.


잘한 줄 알았는데, 뭔가 제대로 못했구나. -> 나 스스로를 비난

나는 제대로 했는데, 애가 이상한거같다. ->  아이를 비난


아이를 낳는 그 순간부터 나는 나 스스로를 비난 -> 아이를 비난 -> 나 스스로를 비난 -> 아이를 비난  이러한 생각의 순환을 거듭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남편을 비난"하는 것도 필수로 들어간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는 동안 너는 하는 게 뭐 있어?!  이 아이가 이러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닮아서 그래!


우린 예비엄마들과 초보엄마들에게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무엇이 좋대, 이렇게 저렇게 키워야해,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 그거는 하지 말고.......


라고 끝없이 정보를 준다. 물론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엄마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아니 임신한 여자가 커피, 술 같은 것도 못참아? 고작  열 달인데?(사실 열 달이 아니다, 임신 전 준비 기간부터 모유수유기간, 그리고 육아를 전담했을 때는 시간부족으로 몇 년동안의 추가적인 금욕생활이 요구된다)이 정도도 못하면 자격없는 엄마지, 엄마가 그 모양이니 애가 아픈거지



하는 비난과 과도한 책임전가가 담겨있다.


이러한 비난이나 책임이 부당한가 부당하지 않은가의 논쟁을 떠나서 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


엄마가 과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통제가 바람직한가?


라고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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