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지만 죽는 것은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노인들은 정말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의 키워드 중에서 고령화는 모를 수가 없는 단어가 되었다.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져도 정신이 말짱해 고통 속을 해매는 경우, 몸은 비교적 건강하지만 정신은 온전치 못해 가족들이 고생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웰빙, 웰다잉 이라는 단어도 참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내 노후가 충분한 돈이 있는 안락한 삶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노인은 생활전선에서 제외되고, 거듭 제외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말로의 주인공이 된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는 삶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비참한 삶으로 이끌기에 살아갈 날은 남았지만 돈은 없는 노인에게 삶은 지옥과도 같다. 이 영화는 그런 노인들의 삶을 그리는 영화다.
1. 삶에 큰 화두를 던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서글펐다. 내 인생도 저렇게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자식이 있다면 자식들이 케어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은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기에 돈을 많이 모아놔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결국 열심히 살아도 사회는 나를 점점 소외시킬 것이기에, 소외된 삶속에서 나는 점점 외로워져갈 것이다. 외로움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내 신념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외로움을 넘어 비참함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하게 되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노인들을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와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의 모습 등등 노인들 중에서도 저소득층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영화일 것 같다.
2. 너무 답이 뻔히 보이는
하지만 영화는 노인들의 한정적인 모습만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지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사회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아주 긍정적이진 않더라도 그들을 보호해야할 정부마저 플랜 75를 출시하며 어찌보면 노인을 위하는 척하지만 노인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영화는 내용이 잔잔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의 삶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동정의 요소가 참 많은데, 다른 노인들의 다양한 죽음의 선택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정부의 무관심, 사회의 무관심으로 체념해서, 혹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서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만 보여주는 지점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삶의 미련을 버리는 이유가 조금 더 다양하게 나왔더라면 더 공감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버림받은 노인들의 불쌍한 모습만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제대로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결국 이 영화의 장르는 신파가 아닐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영화를 보면서 왜 이 가사가 계속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인공 할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난 아닌 척 하면서도 이 영화에 동화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조부모님이 생존해계신 나로서는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물어보겠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당신은 정말 삶의 미련을 버리고 자의적으로, 더 아프기 전에 비참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조금 더 건강할 때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가? 나는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누구에게나 삶의 이유가 있기에 삶에 대한 집착도 어느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쿨하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적당한 체념이 들어가겠지. 하지만 나의 삶의 끝이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누군가에게, 사회에게 알게모르게 가스라이팅당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음 좋겠다. 나의 죽음을 향한 선택이, 나의 안식을 위한 길이길 바란다.
이 영화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여한 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