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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Jul 21. 2021

고전 영화 속 여배우들의 명과 암

뜬금없이 영화 보다 말고 하는 자기반성적 고찰

 최근 고전 영화에 심취하는 바람에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고전 로맨스 영화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영화들을 고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아무래도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출연 여부였다. 보다보니, 영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요즘은 영화를 이끄는 남성 캐릭터가 많다고들 하고, 이런 현상은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의 그늘 아래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드문드문 여성 서사의 영화들이 나오고 있고, 개인적으로 이런 흐름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뒤늦게 고전 영화들을 보니, 고전 영화들은 여성 캐릭터들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연 남자 배우들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영화의 초점은 여자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때의 여배우들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걸까.


티파니에서 아침을, Funny face,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등의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히트작에서 공통적으로 그 시대의 보통의 여자는 태생적으로 보석을 좋아하고, 부자 남자를 낚아 인생 피는 것이 목표이며, 그런 여자들은 일정 부분 멍청한 데가 있을 수도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Funny face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의 캐릭터는 여자의 치장과는 거리가 먼, 책벌레 여자로 등장하지만 그런 여자는 흔치 않기 때문에 별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의 캐릭터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들의 패션이 정말 화려하다. 아마 고전 영화에 대한 선호도는 현대의 사람들이 봐도 촌스럽지 않은, 클래식한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필자도 영화의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정말 감탄하면서 보게 된다.  하지만 관객의 만족스러운 눈요기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뿌리박힌 고정관념도 함께 보이기 때문에 화려함 이면의 숨겨진 상품적 시선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를 봐도, 그 상품적 시선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대중이 원하는 여성성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명성은 얻었지만 진짜 그녀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은 없었던 시대에서 그녀의 몸부림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배우의 역할과 실제 성격이 동일시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의 영화들을 보면, 정말 완벽한 스타일링, 고급스러운 느낌이 정말 눈길을 사로잡지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일종의 광고, 화보에 등장하는 모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당연한 여성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현대를 살고 있는 필자는 왜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현대의 영화 속 여성들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사실 여성 중심 영화라고는 했지만 주인공이 여자일 뿐이지 그저 사회 속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한 인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여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고전 영화들의 캐릭터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성을 사람이기 전에 여성미가 필수적으로 가미되어야 하는 사람에서 여성미 같은 거 없어도 되는 사회로 오는 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요구받았던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영화 속 캐릭터도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정말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그 시간에는 많은 이들의 거침없는 표현이 필요했음은 잊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


뜬금없지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분히 주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나는 너무 현재와 미래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과거의 어른들이 너무 당연하게 요구하는 여성적인 모습에 불만을 가진 적이 많았었다. 장녀이니 남동생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느니, 뭐 여자애니까 이런 행동 거지를 해야 된다는 둥 은근히 느껴지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적이 많았었고, 지금도 그 스트레스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어른들의 사고방식의 편협함을 깨려고 했었고, 내 문제보다는 어른들의 문제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옛날 영화를 보았을 때에 느껴지는 화려함 이면의 불편한 느낌은 내가 기성 세대에게서 느꼈던 기시감과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과거를 살아온 그들에게는 여자에게서 여성성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니까. 내가 어른들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잣대로 그들의 과거를 재단하려고 했기 때문임을 알았고, 그 부분은 어른들을 탓하고자 했던 나의 문제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어리석음에 또다시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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