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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hilarious Aug 23. 2021

아이유의 팔레트는 누군가의 페르소나가 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 <썩지 않고 아주 오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는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4명의 감독이 가수 아이유이자 배우 이지은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후 만들어낸 각기 다른 단편 영화들의 모음집이다. 그중에서 나는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오래"의 해석의 키가 될 노래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페르소나 전체에 대한 리뷰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단편을 본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보고 난 후에 느낀 점이 있었다면, 이 단편들을 나름대로 해석한 글을 자신 있게 발행하기에는 내가 느낀 느낌들이 너무 모호해서 내 해석을 독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싶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난해하기도 했고, 나조차도 이 영화를 이해했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뷰를 쓸 생각이 없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될 만한 포인트를 뒤늦게 찾아내어 주연배우의 앨범이 영감이 되어 하나의 영화가 된 것이 신기해 뒷북이지만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출처 아이유팬카페 러브유

나는 배우 이지은보다는 가수 이지은의 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그녀가 발매한 수록곡들을 많이 찾아듣는다. 그중에서 많이 듣는 앨범은 Palette 앨범인데, 그 앨범 속에 Jam Jam이라는 노래를 다시 듣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최소 수십 번은 들었던 노래인데, 가사가 갑자기 꽂히면서 이 가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데자뷔를 느꼈다. 그 전에는 사실 이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가수의 음색이 도드라지는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왜 이 가사가 섬뜩할까 싶었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난 이 가사를 영상화했던 한 단편을 본 적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이 단편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알 만한 사람끼리 이 정도 거짓말엔

속아주는 게 예의 아닌가요

될래 그깟 멍청이 뭐든 해봐요 우리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마요 (JAM)

설탕이 필요해

난 몸에 나쁜 게 좀 필요해

뜨뜻미지근한 건 그만해

막 솔직하겠다고? 그게 뭐라고

I need some sugar

I need something fake

진심이란 게 뭐야? 난 상관 안 해

둘 다 알잖아 Limit 곧 끝날 텐데

식기 전에 날 부디 한껏 녹여줘 Babe

Jam, 설탕 탕 탕 사랑 랑 랑

Jam, 설탕 탕 탕 사랑 랑 랑

사랑한다고 해, 입에 발린 말을 해 예쁘게

끈적끈적 절여서 보관할게

썩지 않게 아주 오래

I need some sugar

I need something fake

천연 그런 거 몰라 자극적이게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의미 그놈의 의미

어서 다 녹여줘 Babe


내가 가사만 보고, 해석한 바로는, 의미 없는 인간관계에 대해 비웃는 사람의 시니컬한 모습을 상상했었다. 현대인들의 인간관계 속에서 진심이란 생각보다 찾기 힘들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웃어야 하는 일도 다반사이고, 진심을 주었다고 생각한 관계 속에서 미묘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 노래에 등장하는 설탕은 인간관계에 고통받던 내가 진심인 척 다른 이들 앞에서 페이크를 연기한 나는 지금 너무 지쳤으니까 내 몸에도 페이크 같지만 확실한 자극을 주는 매개체를 선물하고, 너무 남에게 보였던 위선에 대해 곱씹지 말고, 의미 같은 건 찾지도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곡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보인 fake, 내가 남에게 보인 fake 모두 다 의미 없는 것들이니까. 그런데 이 단편을 보고 나서 가사를 다시 읽어보니, 여자 주인공을 사랑을 게임처럼 하는 팜므파탈로 설정한 이 해석이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과 여자의 위대함을 운운하며, 남자는 여자의 사랑 없이는 의미 없는 존재라는 둥 특유의 개소리를 시전 하는 남자, 자신은 다른 남자와는 차원이 다른, 여자를 존중하고, 아끼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남자라는 자부심이 있는 이 남자도 결국은 보통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하찮음을 꿰뚫어본 여자는 진정한 사랑은 구속일 뿐이고, 의미있는 관계 따위는 없다고 비웃으면서 자신이 현재 처한 미적지근한 애정관계에 돌파구를 찾고 싶다면 네 마음, 네 심장을 내보여 증명이라도 하라고 요구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의 역설을 보여준다. 그런 적반하장을 시전하는 여인의 마음으로 이 가사를 읽어보면, 이 여자의 팜므파탈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영화를 보면, 가사에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끊어진 연결고리를 다시금 이을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면, 절여서 보관되어지는 대상은 한 인간의 심장이다. 심장은 한 인간의 혼, 정신, 마음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영화 속 여자는 남자를 가지고 고단수로 밀당을 시전한다.  남자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여자에게 자신이 뭘 포기했는지 구구절절 읊어가면서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지만 여자는 그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영화를 보면, 여자가 자신을 떠나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남자의 고군분투가 애잔해 보일 때가 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이미 식어버린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똑같은 상황 속에서 남자의 경우, 남자는 위선이 가미된 충성심을 요구하고, 여자는 관계의 일시성을 강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사랑했던 표식, 심장을 요구한다. 자신은 이미 사랑이 끝났으니, 한 때, 사랑을 했던 자신과 연인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혹은 마치 전리품처럼. 전리품이어서였을까,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낸 남자의 표정은 세상을 잃은 듯했다.

그리고 노래가사와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예의". 남자는 자신의 약혼자까지 버려가면서 어린 여자를 선택했는데,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으려면 이 어린 여자와 계속 사랑을 지속시켜 나가야할 사회적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남자에게  예의란 자신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충성심을 내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오히려 남자에 대한 사랑이 식었음에도 가식으로라도 사랑한다고 일종의 거짓말하고 있는 자신이 더 예의있지 않냐고 맞받아친다. 그리곤 사랑이 식어버린 이 상황을 외면하려는 남자에게 굳이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야 겠다면, 너의 심장이라도 나한테 보여준다면, 유효기간을 늘려주겠다고 딜을  한다.

개인적으로 두 남녀의 각기 다른 비틀린 욕망을 예의라는 단어로 단정지으려고 하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 영화의 여자를 단순히 팜므파탈이라고만 하기에는 여자의 역할이 너무 가벼운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진지한 척만 했을 뿐 사실은 그저 젊고 예쁜 여자의 미모에 취한 한낱 위선적인 남자를 치명적인 매력과 적당한 무례함으로 참교육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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