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즐겨봤을, 애니메이션은 있고, 아이일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살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애니메이션, 가장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은 정말 중요하다. 나의 경우, 가장 자주 접한 애니메이션은 뮬란이었다. 물론 아빠차에서 볼 수 있는 고정적인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점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어렸을 때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 같은 연약한 공주 스테레오 타입들을 제대로 심취해서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딱히 공주놀이에 취미가 없었다는 어머니의 말씀과도 결이 같이 한다. 나는 이 때의 내가 신데렐라, 라푼젤, 백설 공주가 아니라 뮬란을 보았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이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는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나를 구원해 줄 왕자님은 저기 어디에 살고 있을거야"라는 세계관을 강조하는 디즈니 공주들에 심취한 적이 없고, 디즈니가 나에게 주고자 했던 환상의 세계에 허우적댄 적이 없어 오히려 디즈니의 빌런 캐릭터들을 더 좋아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뮬란은 그래도 잘 보았었기 때문에 뮬란과 내가 싫어했던 공주 캐릭터들은 뭐가 달랐던 걸까.
20살이 넘어 인어공주를 본 적이 있다. 인어공주가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알고자 했던 마음에 보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30분도 못보고, 그냥 꺼버렸다. 왜 재미가 없지 라고 생각해 보니, 이 인어공주가 너무 주체적이지 않고, 왕자에게 매달리는 듯한 애절한 모습이 20대를 넘긴 나에게는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착하기만 한 과거의 디즈니 캐릭터들에 대한 회의가 많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저 해맑고, 사랑에 목매는 순수하기만 한 인어공주는 그 사랑을 위해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게 눈에 훤히 보이는 마녀의 술수에 넘어간 바보같은 여자일 뿐이었다. 내 눈엔 인어공주가 딱히 정체성도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캐릭터로 보였기에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오히려 나는 나쁘더라도 주체적인 캐릭터가 더 좋았었다. 그래서 알라딘의 자스민이 좋았었고, 빌런들이 밉지 않았으며,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민폐를 끼치는 캔디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디즈니 캐릭터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인터넷 댓글들을 보고 있으면, 요새 "디즈니 감성"이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그 디즈니 감성은 디즈니를 좋아했었던, 순수하고, 어렸던 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것일 뿐이지, 정말 예전의 보았었을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보고, 그 때와 같은 환상적인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까 그것이 난 궁금하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단어는 긍정적인 단어라고만 하기에는 의문읻 들기도 한다. "어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아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 감성을 잃어버린 나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담긴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는 무섭지만 아이들이 가지는 환상 속에 세계에서는 벗어난 어른아이. 그 어른 아이들은 더 이상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내용에 감동을 받는 경우보다 그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동을 받았었던 과거의 나에 대한 아련한 감정으로 디즈니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디즈니 플러스가 들어온다는 것은 이제 디즈니의 전 세대적 영상들을 모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컨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된만큼 아이들이 자의적으로 보는 영화들이 많아질 것인데, 이런 기술적으로 발전된 상황에서 나는 어린 아이들이 인어공주 같은 그런 과거의 캐릭터들은 가장 늦게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내가 예전에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자신의 딸이 특정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한 아이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심히 공감하기도 했으니까. 디즈니라고 모든 캐릭터들이 그렇게 순종적이기만 한 캐릭터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장 처음 보았거나 가장 많이 본 캐릭터들에 대한 기억이 그 아이의 정체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