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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Nov 16. 2020

망원역에서 만난 시각장애인을 돌아보며

헤맬 순 있다. 문제는 없다.

'탁탁. 탁타닥...'

지하철 6호선 망원역, 한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물끄러미 지켜보다 내 앞에 이르러 그에게 말했다.

"여기 사람 있습니다."

그는 방향을 돌려 개찰구 쪽으로 걸어갔고 카드를 찍은 후 제 갈 길을 갔다.


이를 지켜보던 미화원 아주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고 한동안 시각장애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고 있었다.

아주머니께 넌지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잘 찾아다니세요."



5~6년 전 즈음이었나. 신촌역에서 시각장애인과 마주했다.

그는 개찰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거기 아니에요.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도움을 주려고 했다. 

반응은 아주 차가웠다. 

신경질적인 태도를 내게 보인 후 떠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헤맨 게 아니었다. 나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건이지만 길을 찾는 감각을 스스로 발달시켰고, 이 감각으로 길을 찾고 있었다.

내게는 이게 헤매는 걸로 보였고. 나는 도움을 준 게 아니라 과정을 방해한 셈이었다.

여기에는 '나는 앞이 보이는 데 당신은 보지 못한다'는 일말의 동정심도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터다.



듣지 못하면, 냄새를 맡지 못하면, 앞을 보지 못하면?

살면서 간혹 해보는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답답함이 밀려온다.

실제로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꿋꿋이 살아간다.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불안하고, 불편하고, 안타까울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내 기준'에서 어쭙잖게 내미는 동정이 아니다.

'문제없다'라는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게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신촌에서 도움을 주려던 내 경험 덕분에, 얼마 전 망원에서 만난 그에게 사뭇 태연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문제없다'라고 믿는 태연한 태도. 이건 무관심과 다르다.

혹 피치 못할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을지, 어떠한 불편함은 없는지 지켜보는 관심은 가져야 한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다음은 사회, 정치와 제도의 몫이다.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데 문제가 없도록 시설을 갖추고, 안전장치를 튼튼히 구축하는 일.

태연하되, 시선을 거두지는 않는 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 본다.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본다. 나는 사회 구석구석의 문제를 살펴보는 눈이 살아있는지.

사회의 문제를 살펴보는 눈이 멀어버린 채, 오직 내 이기심만 채우려 애쓰는 사회적 맹인으로 살고 있는지.




사회적 맹인.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맹인이다.

생물학적 맹인처럼,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고 당황하고 갈피를 못 잡고, 그러면서 살아간다.

해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비장애인 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곧잘 '내 기준'으로 타인을 넘겨짚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잘 아는데"라며 간섭한다.

그리고는 도움 내지 조언이라는 단어를 들이민다. 상대방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대개 이런 태도를 두고 꼰대라고 부른다.


시각을 잃은 이들이, 그럼에도 자기만의 순서와 방법으로 목적지를 훌륭히 찾아다닌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헤매고 있는 우리 모두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볼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볼 수 없지만 저마다의 감각으로 멋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괜한 걱정 대신 태연한 태도로 응원을 보낸다.


헤맬 순 있다.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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